나도 한 때는 따듯했던.. 현재는 T발..
저경력 교사로 처음 담임을 맡았던 때였나? 기억이 가물 가물한데, 무작위로 학급 봉투를 뽑고나서 한 선배님이 난색을 표하셨다. 발달 및 지체장애 학생이 있었는데, 전년도까지도 너무나 심한 폭력성과 위생 문제 등으로 여러 문제가 있었고, 이제 4학년이지만, 큰 덩치와 힘 때문에 자신이 맡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는데, 남자 선생님이 맡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내가 그 학급을 맡게 됐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첫날.. 처음으로 맡은 방송이란 업무에 당시에 방송으로 의식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무게감이 지금과는 좀 달랐던 때인지라, 긴장하며 시업식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방송실과 교무실을 왔다갔다 했는데(당시에 우리반은 아예 건물이 달랐음), 그렇게 시업식을 마치고 급히 교실로 와보니 교실은 난장판이 되있었다.
걱정이 되었던 그 학생이 전년도 선생님이 남기고 간 큰 화분을 넘어 뜨려서 깨뜨리고, 애들에게 실내화를 던져서 옆반 선생님이 수습중이셨는데, 교실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부터 느껴지는 어수선함과 교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난장판..
솔직히 특수학급학생, 통합교육 등에 대해서 대학 때 배운 것 말고는 아무 지식과 경험도 없었던 나였고, 심지어 주변 선생님들에게 그 학생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적절한 조언을 듣기도 힘들었기에(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때 특수학급 선생님과는 이야기를 못 나눴는지, 그 정도로 준비가 안되있었나보다. 신규라는것을 아셨으면 먼저 조언을 해주셨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이제서야 드네. ^^;;) 결국 그 학생과 같은 반을 해본 다른 학생들에게 이전엔 어떻게 선생님들이 지도를 하고 교육을 했는지 물어봤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의 조언?을 따라, 이전처럼 다른 학생들과 같이 앉지 않도록 따로 자리를 분리해서, 그 학생이 걸핏하면 휘두르는 팔과 수시로 뱉었던 침, 던졌던 물건 등에 다른 학생들이 최대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2주 정도를 보냈던가? 혹은 한 달 정도였던가?
그 동안에 그 학생(이하부터는 : 섭이-가명-)과 지내면서 이러한 거리두기는 전혀 교육적이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걸 느꼈다. 섭이와 다른 학생들과의 문제 상황은 줄어들고 있었지만, 모든 학생들이 섭이를 피하고, 어우러질 수 없는 교실 환경에서 문제점을 느꼈달까. 거기에 나 역시도 섭이와 이렇게 거리를 두며 지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껴졌기에, 섭이의 자리를 바로 내 자리 앞으로 옮겨서 마치 교사인 내가 짝인 것처럼 한동안 생활을 했다.
이 때부터 내가 주안점을 뒀던 것은, 섭이와 가까워지기. 매 쉬는 시간마다 섭이와 이야기를 나누고(대화 자체가 잘 안되었지만), 가위바위보 등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장난을 치고, 점심시간 등에는 함께 학교를 자주 거닐면서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알게 된 점이, 섭이의 폭력적인 행동의 바탕에는 ‘재미’가 깔려있었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폭력을 휘두를 때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에서 그것이 자기를 봐달라는 의미라는것도 알게 됐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딱빰이나 손목을 때리기 놀이를 할 때에도 보니 자기가 맞을 때에 되게 신나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그 때 부터 장난이 아니라 너무 과한 힘으로 상대방에게 손을 대는 것은 남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 교육했고, 이해하는데 까지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점점 그런 폭력성은 줄어들어 갔다.
이러면서 아직도 내 교사의 삶 속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에 하나가, 다른 친구들이 서서히 나와 섭이 사이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다. 우리 둘이 장난을 치고, 우리 둘이 산책을 하고 있을 때 하나 둘씩 다가와서 자기도 같이 섭이랑 가위바위보 하고 싶다고 하고, 섭이랑 놀이터 가고 싶다고 하고, 섭이랑 사진 찍고 싶다고(당시에 DSLR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한창 사진 찍던 때라)하는 등 내가 섭이와의 거리를 줄여 나가자, 다른 아이들에게 가르치거나 할 필요 없이 자연스레 그 모습을 통해서 학생들도 섭이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 때가 바로, 교사가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섭이 어머니도 몸이 불편하셔서, 섭이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뒤에는 아침에 등교한 섭이를 교직원 화장실에 데려가서 따로 구매한 샴푸로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하며 씻겨주었었다. 이런 것이 좀 반복되다보니 나중엔 가정에서도 좀 더 챙겨주셔서 전혀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등교하는 일이 줄어들었는데, 그러면서 가정과 교실 사이에 신뢰도 더 생겼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나 이렇게 까지 해봤어라는 느낌 보다는 요즘엔 교사로서는 좀 더 차가워진 느낌, 요새 말로 하자면 뭐랄까. T발 뭐 어쩌구 저쩌구 느낌의 교사(이건 교사 뿐 아니라 다둥이 아빠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인지라, 이전에 좀 더 뜨거워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싶었던 것 같다.
교사가 열정이 가득하고 뜨거워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학생들에겐 롤모델이 되어주고, 가정엔 신뢰감을 줄 수 있을테니깐.. 지금의 나에겐 논리와 합리적 사고 보다는 이런 몽글몽글함이 좀 더 더해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