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다시 스승의 길을 걷는다.
얼마전 에듀프레스의 장재훈 기자의 미래교사상은? 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국가교육윈원회에서 교육현안 인식조사를 바탕으로 미래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할 교사상으로
"주도적인 삶을 개척해갈 수 있도록 재능을 발굴해주는 교사,
개별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학생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교사"라는 이야기를 펼쳤다.
벌써 교육경력이 17년이다. 내가 학교라는 곳에 들어서 졸업을 하기 까지 초중고 12년 대학교 4년을 겪었으니
30년이 넘게 교육기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이된다. 길고도 짧은 시간에 학교라는 곳은,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가진 무게와 사회적 요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수시로 변했다. 그렇게 달려온 2024년, 저 짧은 기사를 보고
과연 선생님이란 무엇이고 교육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가진 교육철학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의 가장 큰 사회적 변화였던 코로나 펜더믹을 기준으로 역주행을 해보았다. 그 당시는 원격수업이 능숙한 에듀테크를
잘 활용하는 선생님이 유능했고, 그 전에는 학생이 행복하도록 잘 놀아주는 선생님, 또 평가가 있던 시기에는 공부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었다. 내가 학창시절까지로 돌아가면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잘 붙잡아줬던 선생님이 참스승으로 기억된다.
문득 그동안 스쳐 간 다양한 선생님을 생각하며 내가 주고 받은 '교육'의 가치에 대해서 교육자로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마다 시대마다 교육의 정의를 논하는 게 다르다. 사전적으로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교육이라고 한다.
당장 그 행위를 떠올려보니 지식 전달, 인성 개발, 재능 발굴, 정서 안정 등 학생 위한 모든 것들이 교육의 일환이다.
새삼 교육의 무게가, 선생님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단 하나의 선생님으로 기억이 된다면 어떤 모습의 선생님일까?
그 모습이 내 교육의 가치이자 내 교육철학이 아닐까. 이제 내 모습을 돌아보며 나만의 교육에 대한 정의를 내릴 차례이다.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라고 묻는 다면 나는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이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수많은 교육학 이론 중에서 내가 가장 믿고 따르는 이론이 바론 대리학습 모방학습 이론이다. 학습자는 타인(신뢰하는 누군가, 주로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는 내용이다.
미디어가 발달되는 요즘 특히 모방학습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아이들이 만나서 배울 상대가 주변 어른, 부모, 선생님에서 훨씬 멀리 벗어나 모니터 속 불특정한 다수에게 지식과 행동을 무분별하게 배우고 있다.
또한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할 부모들 역시,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모범은 커녕, 악습을 정서적 유산으로 남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꼰대같은 소리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교육은 다시 스승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엄격한 잣대로 교사를 판단하고 사생활까지 침범을 하면서 "선생이란 사람이~" 라며 비아냥 하지만 (난 명백히 사생활 침범은 선을 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어른이라면 그게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물론 어른이 나이만 채운 어른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교권을 살려서 체벌을 하고 선생님의 그림자를 밟지 못하게 하는 훈장님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습득과 기술의 활용은 이미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뺏겨가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백과사전도 시리나 빅스비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설 수 있는 가장 큰 당당함은 바로 어른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게 교육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돌봐지지 않고, 핸드폰에서 몹쓸 것을 배우고, 도파민 중독에 허우적 거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좋은 어른이고
난 그 존재의 다른 이름이 바로 선생님이라고 믿는다.
선생님은 교과서이자 유튜브이다. 용기를 가르치려거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예절을 가르치려거든 예절바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책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 독서교육을 하고,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겸손을 가르치고, 따뜻한 말 한마디의 강력한 힘으로 백마디 날카로운 말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무겁고 힘들고 억울한 일이라 느껴질 지 모른다. 덧없고 후회되고 배신당하고 좌절하고 화가 나고 속상하고 마음 앓이에 무너져내릴 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최후에 어른은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존재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보며 무엇을 느끼고 있을 지 모르겠다. 아니, 아이들이 나를 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면 난 교사로써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행동과 말을 듣고 '저렇게 해봐야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하게 한다면 교육은 성공한 일이다.
인간이 수많은 생명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건 언어로 지식을 누적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고, 그 지식들은 간접경험함으로써 인간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좋은 어른이 되는 일이 곧 스승이 되는 일이고, 교육의 시작이자 끝이다.
판단은 아이들의 몫이다.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할 지, 당장의 쾌락만을 위한 길을 택할 지 알 수 없다.
다만 선생님으로써의 내 말한마디가 그들의 삶의 귀한 선택의 순간에 작은 힌트가 될 수 있으려면
선생님으로써의 내 손길 하나가 얼어붙고 가시 돋은 그들의 삶에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으려면
나 스스로 그들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난 그런 좋은 어른이 되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