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 줍는 교실살이-6] 밤편지(2)
지난번 너희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어.
내가 마음이 바쁘고 급해서, 자꾸 앞장서서 빨리 오라고 다그치기 바쁠 때가 많은데, 지난번에 적어둔 ‘느리게 피는 꽃’ 이란 시가 그런 행동을 반성하게끔 해 주더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급해야 할까. 성실하게 노력하는 건 좋은 거라고 배웠는데, 왜 가끔 숨이 막힐까. 알고 보면 나를 위해서도, 너희를 위해서도 그럴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지. 조금 설렁설렁 뒤쳐지고, 풍경도 보면서 즐겁게 걷는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처지는 건 아닌데도, 평균에 맞추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주절주절, 이런 저런 고민이 머릿속에 시끄러운 나는, 너희가 참 신기해.
학년 초에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면서 감정 낱말에 내 이름이 적힌 자석을 붙이는 감정 출석부를 했었잖아. 너희가 참 재미있어 했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아침마다 발표하기도 했고. 요즘은 아침 시간에 다른 걸 하느라 칠판에서 떼 두었지만 말이야.
아무튼 자석을 붙일 때, 당연히 아침이니까 더 자고 싶고, 공부할 걸 생각하니 힘이 빠져서 피곤하다, 힘들다, 지루하다 같은 걸 고를 거라고 예상했거든.
그런데 깜짝 놀랐어. 너희가 그럴 나이라서 그런 건지, 원래 긍정적인 편이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행복하다, 신난다, 좋다’ 등을 자연스럽게 다들 고르는 거야. 아주 특별한 일이 있는 몇 친구를 빼곤 전부 그렇게 좋은 감정을 고르며 정말 맑게 웃더라. 그 웃음이 뿌리는 반짝이 가루를, 아침마다 나눠받을 수 있어서 참 고마웠어.
물론 너희가 감정 출석부 붙일 때처럼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 매일 강아지들이 뒤엉켜 다투듯 크고 작게 다투고, 어렵게 화해하고, 너희도 저마다 조그만 마음 속에는 평소엔 잊고 지내지만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걸 알지.
선생님은 말이야. 어쩌다 그런 고민이나 본심이 너희 마음 깊은 데에서 툭, 튀어나올 때, 우리가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공유할 때를 참 좋아하거든. 그 순간엔 서로가 살아있다고 연결되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돼. 그리고 우리는 서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존재였다는 걸 잊고 살다가, 그럴 때 기억하게 되더라.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국어 시간, 글쓰기 수업에 교과서에 나온 글보다 더 공감이 되는 글을 읽어주고 싶어서 초등학생이 직접 쓴 ‘달리기 시합’이라는 생활글을 읽어주었던 것 기억나?
‘나’는 친구 ‘최정욱’이랑 달리기 시합을 하면 내가 이기는데, 그럴 때마다 최정욱은 나보고 “치사하다.”고 말한다는 짧은 글이었어. 달리기를 못하는 것 같다며, 그 친구가 한 번쯤 이기면 좋겠다는 말로 글은 끝을 맺었지.
그 글을 읽고 나서 너희가 자신도 모르게 툭, 하는 말들이 모두 너무나 자신다운 말들이어서, 듣다가 웃음이 났어.
글이 끝나자마자 평소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00이가 또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혼잣말 치고 무척 큰 목소리로 갸우뚱거리며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지.
"달리기는 이기는 게 좋은데 안 이기는 게 좋다고?"
“아, 00아, 그건...”
내가 설명을 해주려고 하는데,
다른 아이가 어! 어! 하며 손을 들었지. 평소에 손놀림이 남달라서 지우개 따먹기 놀이를 무척 잘하는 00이였어. 00이는 자기만 이기면 재미없으니까 친구들을 조금씩 봐줘가며 노는 걸 좋아하더라. 그런데 꼭 자기 얘기를 말하는 거야.
"어, 어, 맨날, 이기기만 하면 지겨우니까 그런 거예요."
그때, 평소 점잖은 00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또박또박 말했어.
"그렇게 자꾸 나만 이기고 하면 친구가 속상하니까 양보하려고요."
친구랑 놀 때 조금 눈치를 보곤 하는 00이도 꼭 자기 마음을 말했어.
"친구가 치사하다고 나랑 안 놀까봐 그런 거일껄?"
똑 자기를 닮은 답을 하길래, 하나 더 물어보고 싶어서 ‘여러분도 최정욱처럼 친구한테 샘이 난 적 있어요?’ 하니 또 나는 그렇다, 나는 상관없다, 등등 와글와글, 이야기를 참 많이 했지. 그런 시간이 재미있었어.
승부욕이 많아서 늘 놀이를 할 때 지는 친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지면 화를 내고 울상이 되어버리는 00이를 위해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이 글을 쓴 아이 마음처럼, 친구가 내가 좀 못해도 봐주거나 내 마음을 조금 알아주거나 하면 어때요?’
그러니까, 00이가 내 낚시(?)에 걸려들어 손을 번쩍 들었어.
그 친구가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 거라고 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나 풀어놓았지. 같이 놀다가 진 친구가 울먹이니 다른 친구가 이겨놓고도 진 것처럼 해서 우는 친구를 달래준 일이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였지.00이도 그런 발표를 하면서 혹시 자기 행동에 대해 조금은 깨달았을까? 아, 나도 그렇게 해 주면 좋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급한 욕심인가?
요즈음은 우리가 마음을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지. 너희가 ‘아홉 살 마음 사전’을 보고 너희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열중하면서 발표하던 게 생각나는데, 조만간 시간 내서 그런 글쓰기를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 웃겼던 일을 쓰려고 했는데,
그건 다음번으로 해야겠다.
혼잣말이 될 편지를, 이만 줄이려고 해.
잘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