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 줍는 교실살이-2] 교실 문을 열며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는, 교실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 일찍, 학교가 조용할 때 가장 먼저 도착해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차를 한 잔 마시는 여유!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첫 발령이 났던 학교는 집에서 도보로 15~20분쯤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거의 10분만에 도착했다. 학교가 가깝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리게 되어, 오히려 출근 시간이 늦어지곤 했다. 아이들과 비슷한 시간에 등교하며 아침을 늘 분주하게 시작한 것 같다.
학교를 먼 곳으로 발령받고, 조금만 늦게 가면 교통지옥이 펼쳐지는 동네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갑자기 부지런을 떨게 되었다. 이전 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일어나던 시각이, 이제 집에서 나오는 시각이 되어 버린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교통 특성 때문인지 일찍 나오는 분이 많아 다행히 무섭지는 않았다.)
아침에 교실 문을 혼자 열고, 조용한 교실에서 이것저것 하다보면 6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8시 25분이 지나서 어슬렁어슬렁 교실로 오곤 했다.
아침형 인간들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니! 학창시절 부끄럽게도 아슬아슬한 지각을 달고 살았던 나로선 참 여유롭고 상큼한 기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6학년에서 갑자기 2학년 담임으로 변신하자, 첫날 아침부터 뭔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몇몇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이른 시간부터 복도를 큰 목청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채우며 등교하는 것이었다. 첫날이라 그런 줄 알았더니, 그 다음날도, 다음 날도... 학원차를 타고 등교한다거나 부모님 출근 차를 타고 온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일찍 오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혼자 아침을 시작한 뒤 여유로운 마음으로 너희를 맞이하고 싶단 말이다...ㅠㅠ'
나는 아직 정신도 덜 깨어났고, 가방도 옷장에 넣어야겠고, 컴퓨터도 켜야 하며, 일단 몽롱한 머리를 깨우려 입에 커피를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아이들은 화장실까지 따라오며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내가 잠깐 안 보이거나 대답 대신 칠판을 가리키면 이걸 읽고 행동하겠지?'
칠판에 열심히 궁리해서 뭔가를 적어두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물으면 칠판을 가리켜주기도 했지만, 결국 중간 설명이 필요했다. 어떤 아이들은 내 손가락만 빤히 보고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마치 '코딩'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나는 나름대로 자세히 설명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지 못한 곳에 늘 아이들의 질문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명령어를 덜 만들었어...)
'이건 마치... 질문 지옥에 갇힌 것 같군....!'
서로 적응해가면서, 아이들이 각자 알아서 도서관에 가며 조용히 시작하는 아침도 가뭄에 콩나듯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과 아침 대화를 어느 정도 즐기면서, 어디까지 대답해 주어야 알맞은지 요령이 조금씩 생겼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연구실(교실 바로 1m 앞에 있는데)에서 물 한 잔 떠올 잠깐의 틈이 왜 이렇게 없지?' 하는 순간이 많다는 건 아직 큰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침에 1등으로 도착해서 하루를 시작하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 요즘 점점 1등을 빼앗기고 있다. 내가 평소보다 조금 늦는다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이 이미 입장하려고 대기 줄을 서 있다.
그런데, 참 고마운 일이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아침은 분주하고 피곤한데도, 웃음이 날 때가 많아졌다.
아이들이 멀리서부터 조그마한 그림자로 보일 때, 반가워서 손부터 높이 들게 된다.
밉지 않게 핀잔을 주는 아이들이, 작은 일로도 왁자지껄하며 아이들이 웃을 때마다 내게 반짝이 요정 가루를 조금씩 뿌리는 것 같다.
(물론...멀리서 보기엔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반가워 하는 줄 알았더니, 친구랑 학교에 오면서 사소하게 다툰 이야기를 이르려고 벼르고 있었던 날도 많다. 자기들끼리 누가 먼저 왔으니 교실에 더 먼저 들어갈 것이라고 옥신각신하고 있어서 오자마자 중재해 주어야 하는 날도 있다는 거~!)
어떤 녀석은 자기가 일찍 온 걸 뽐내고 싶어서 더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보통은 본전도 못 찾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
그러고보니, 난 얼마 전까지 ‘아침 시간은 조용해야 한다, 독서를 차분히 시작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아이들과 다른 아침 활동을 하게 되면, 독서 이상의 중요성과 효과(?)가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혼자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잘 집중하지 못하거나 시끄러워질 때는 내 카리스마(?)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을 꼭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었다. 내 마음이 전보다 편해진 이유 중 하나는, 위에서 말한 부담과 자책을 조금 내려놓고 아이들과 나의 신체리듬에 맞게 아침을 시작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여유는 알고 보니 혼자서 평화로운 교실에 있을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스스로를 지나치게 조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에게도 더 여유로운 미소를 짓게 되었고. ^^
선생님들의 아침 풍경은 어떤가요?
혹시 아침을 시작하는 선생님만의 의식(ritual)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