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있는 용기-2] 흔들리고 헤매는, 신규 교사
아직은 글솜씨가 부족한가보다. 그냥 술이나 차 한 잔 하며 듣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스륵,
읽어주시면 좋겠다.
1. 흔한 어리바리 신규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규교사 연수를 받고, 첫 근무하는 학교에 첫 인사를 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모든 게 처음인 내가 인사할 때 귀여운 햇병아리처럼 바라보며 웃어주던 선생님들의 표정이 기억난다. 첫 교무회의 때엔 신규 교사는 인사를 잘 해야 된다 싶어서 주변 분들에게만 인사해도 될 것을 회의실에 들어오는 분들에게 30번을 넘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앵무새처럼 계속 인사했던 흑역사(?)도 생각난다.
교직 사회에서 '요새 신규 샘들은 똑똑하고 일도 잘해. 옛날 같지 않아.' 하는 말도 자주 하는데 나는 그 축에는 속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신규 첫 해에 청소년 단체 대장을 맡았던 분이 갑자기 많이 아프셨는데 그 바람에 교내에 누가 대신 대장을 해야 할지 뽑아야 했고, 어린 신규가 귀찮은 일을 맡아야 된다고 어디서 들은 것이 기억나고 가시방석 같아서 결국 손을 들었으나 그 자리에 있던 아무도 말리지 않았더랬다.
기특하다, 고맙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 때는 무엇이 힘들지도 몰랐다가 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떤 책임을 맡은 것인지 아직 아는 바도, 마음의 짐도 없어서 더 용감했나보다. 워낙 큰 학교라 보통 많으면 100명인데 이 곳은 280여명이 단체의 회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일하는 손이 느려 혼자 매일 저녁까지 일하고 집에서도 일했다. 늘 8시에 퇴근하며 배가 고파 집에 갈 때 먹었던 찹쌀도너츠 집이 생각난다. (그 땐 초과근무를 한 번 달기도 했는데 꼭 돈을 밝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눈치를 많이 봐야 해서 결국 달지 않고 일하게 되었다. 다행히 요즘에는 그런 학교가 많이 없지 싶다.)
학생 210명과 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을 데리고 에버랜드 체험학습을 가는데 교사도 반드시 단복을 입어야 하는 줄 알고 입었더니, 참석한 교사 중에 홀로 단복차림이라 시선을 받았다. 게다가 단복을 입고 아직 앳된 얼굴과 작은 덩치에 여학생으로 오해받아 청소년 단체의 인솔자가 ‘너 왜 남자 숙소로 가니?!’ 하고 잡아서 저, 인솔 교사입니다. 했던 흑역사는 좀 웃기기도 하지만 자다가 이불을 걷어찰 만큼 내겐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교대에 다닐 때 교생실습으로 길어야 4주 동안 겪어본 교실(‘업무’가 무엇인지도 우리들은 정말 몰랐다.)과, 실제로 내가 담임을 맡고 생활지도에 막중한 책임을 지며 업무도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교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교생실습은 게임의 데모 버전의 수준만큼도 못 되었다.
아는 것도 없는데다 아이들이 집에 가고 나면 각자 머물러야 하는 외로운 섬과 같은 교실에서 불안함과 무력감이 조금씩 커졌다. 어쩌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일 때도 내가 궁금한 업무, 아이들 이야기보다는 친교 모임처럼 잡담이 오가다보니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그분들이 퇴근하시면 그제서야 밀린 일을 하느라 늘 깜깜해지면 집에 가고는 했다.
신규일 땐 많이 물어야 해, 하는 말만 믿고 많이 질문했지만, 각자 바쁜 일정 속에 나를 반갑게 받아주기 어려운 분도 많았다.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으셨더라도 사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확히 모르니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시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대부분 고마운 분들이 많았지만, 개중에는 글의 처음 부분에서 얘기한 것처럼 ‘신규인 사람이 원래 귀찮은 잡무를 떠맡고 그래야 예쁨을 받는 것이다’, 하는 메시지를 주는 분도 간혹 있었다. 순진한 나는 네! 끄덕끄덕, 그렇구나! 세상살이에 도움 되는 가르침을 받았다 여긴 기억이 난다. 다른 운 좋은 동기는 우리 학교는 신규 햇병아리 선생님이라고 업무도 적게 하고 학급운영에 보다 힘쓰라고 하더라, 다들 귀여워해주며 항상 조언해주시더라 해서 눈물 나게 부러웠더랬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일을 잘 모르는 사람, 싹싹해야 하는 사람, 매일 무엇이든 하나라도 배워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것저것 알게 되는 대로 흡수하기에 바빴다. 업무 뿐 아니라 학급운영도 마찬가지였다. 교대에서 실제로 학급운영을 시뮬레이션 해 본 적은 없었고 가이드라인이 없고 융통성이 부족해서, 정말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정답과 정석에 가까울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 안에서 나만의 엉뚱함을 발휘하는 것은 위험한 도전이며 때로는 어리석은 행동이기도 했다. 그럴 땐 일단 외우고 습득하는 것이 해결방법인 것처럼 수동적으로 살아야 하는, 그런 구조였다. 그러니 빨리 정보를 습득해야 했다.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모르는 것에 대해 알아보고 지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나름대로 창조적이라고 생각했고 엉뚱하다고 4차원 소리도 들었는데 이젠 그런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생활에선 엉뚱하더라도 무언가 공부하거나 익힐 때 나의 습관은 일단 원리가 이해만 되면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하는 식이었다.
‘나보다는 남이, 내가 서툴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입증된 길과 정답을 따라가는 것이 그대로 사용하는 게 내 것보다 나을 거야. 나는 실수도 많고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니까.’
2. 비빌 언덕을 찾아서
신규 교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기댈 언덕, 비빌 언덕’ 이 될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좋다고 했었고 다행히 그냥 직장 동료 중 한 명처럼만 생각하기보다 후배처럼 여기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선생님들이 몇 분씩은 계셨다.
그런 선생님들의 반에 자주 가서 가르쳐달라고도 하고, 그 분들이 하시는 것을 부러워하며 조금이라도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으로 신규교사의 티를 빨리 벗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선배 선생님 교실에 가면 교실을 스캔(?)하고 좋아 보이는 것이 있을 때 한 가지라도 꼭 여쭤보는 것 같다. 이것은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선생님마다 학급을 운영하는 데 다른 특색이 있다. 당연하지만 똑같은 분은 없었다. 어떤 분은 협동학습에, 어떤 분은 각자의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는 데 보다 중점을 두셨다. 학습 능력을 키우는 것에서도 예습과 복습을 꼼꼼히 하고 과제를 잘 해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셨고, 최대한 숙제 없이 수업 시간에 핵심을 꿰뚫으며 진도를 빨리 나가고 수업 안에서 복습까지 관리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학습은 2차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먼저 재미있고 행복한 학급을 만드는 분도 계셨고, 생활 지도를 위해 기초 습관과 예의와 질서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는 분도 계셨다.
정말 운 좋게도,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고 학급을 재미있게 운영하시는 분께서 자신의 학급 규칙이나 공책 정리 방법 같은 것을 바쁜 시간 중에도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신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 오해 때문에 내가 냉랭하게 대한 적도 있었는데 더 넓은 이해심으로 보듬어주셔서 속좁은 나를 부끄럽게 만드셨다. 어떤 분은 환경정리 물품을 만드시면서 젊은 선생님들을 불러 함께 만들고 나누어주신다거나 교실 청소를 보고 도와주시는 등 .. 참 은혜를 많이 입기도 했다.)
처음에는 배워 온 그대로 하니 내가 하는 것보다 수업이 훨씬 체계적이고 좋았지만, 모든 것을 물을 수는 없다보니 내 식대로 하려는데 그것이 자꾸 실패하거나 도중에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방법을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내 철학에 맞는지 생각해보지 않고, 충분히 익히지 않은 채 방법만 모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사 커뮤니티를 통해 얻은 좋은 정보도 때로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맞는지 충분히 고려치 못한 채 사용할 때 기대한 것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