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있는 용기-8]때로는 답정너가 될 것
난 교사가 된다면 기왕이면 공감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마음이 돌 같이 차갑고 단단해서 타인의 고통에 눈감는다면 참 싫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릴 적 읽었던 책 중에 어른이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시큰둥하게 넘어가는 바람에 결국 큰 위험이 닥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나중에 커서 그런 멍청한 어른이 되지 않을 거라고 아이일 때 다짐했던 걸 여태 기억한다.
최근에 깨달은 사실인데, 나는 다른 사람이 짓는 표정을 살피며 내포된 의미를 알아채고 눈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신호를 잘못 해석할 때도 종종 있지만 버릇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 버릇이 아이들을 볼 때도 나왔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망설이거나 스스로 말로 꺼낼 수 없던 말을 자연스레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 마음을 내가 잘 헤아려주고 받아준다고 여겼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아이들이 나와 깊은 마음을 나눈다기보다는 그저 친해지는 것 같았다. 친구 역할은 할 수 있었지만 믿음직한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친하다 못해 무례해지거나 어리광을 피우기도 했다.
마음을 무조건 헤아려주려는 시도가 잘못되었던 것일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도가 좋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방해 요인이 내게 있었다. 먼저, 존재를 수용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마음을 모두 수용해주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몰랐다. 물론 상처를 깊이 입은 사람은 꾹꾹 눌려있던 것들을 끄집어내고 토해내도록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아이들은 상처보다 뻗어나가고 존재가 성장하는 힘이 더 크다. 약함과 어두운 감정을 돌보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을 믿어주며 그들이 지닌 힘과 강점에 주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내가 그걸 간과했던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로는 그들이 내게 상처를 줄 때도 수용하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대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들을 판단하는 말보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말을 하려 했고, 그만큼 희생도 했다. 그만큼 힘들었고 노력했지만, 잔인하게 말해서 그건 어쩌면 ‘비굴함’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내 생각과 느낌을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하게, 하지만 판단이나 강요 없이 담백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초등교사는 한 가지 성격과 대화법만 가지고 있어서는 교실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직업이다. 나는 아마 재미있고 다정한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잘 다치는 하이테크 볼펜 심 같았다. 다정한 역할을 꾸준히 해내려면 지금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건강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역할을 꾸준히, 무사히 해내려면 어느 정도 나 자신에게,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와 아이들 사이에 한계를 표시하는 굳건한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내 성격과 맞지 않게 단호하고 때로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가 되어야 할 때 혼란스러웠다. 아이들에게 행동을 요구할 때 먼저 설명과 그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이를 독단적으로 하는 것 역시 부작용이 크다), 빠르고 단호하게 Yes or No를 결정해 주어야 할 순간도 매우 많다. 리더, 조력자, 판사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의 상태를 볼 때 전문가의 치료가 시급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가정이 많으며, 그런 아이들의 비율이 옛날보다 많이 늘었음을 체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 생각보다는 아이들 사이의 갈등과 괴로운 감정은 깊이 베이는 상처가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될 때가 많다. 그들의 회복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문제가 더 커질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최소의 처방과 함께 그들을 믿고 지켜보는 마음을 지닐 때, 그 회복하는 힘이 무척 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달래어 멎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그들이 지나친 두려움과 불안을 버리고 씩씩하게 뛰놀 수 있게 도와주는 긍정의 힘이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여기에 어울리려나? 그러려면, 내 삶에 더욱 그러한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가 생겼다. 마음의 파도에 휩쓸려 가며 파도를 계속 지켜보기보다 때로는 물속에서 벗어나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천하고 있는 것들
1. 아이가 두려워 할 때, 함께 호들갑 떨기보다 안심시켜 주는 것
아이의 흔들림을 모두 수용하고 반응해주는 것이 아이를 돕는 건 아니다.
2. 아이의 말을 내용 그대로 믿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지켜보는 것, 불안을 담지 않고 조언하는 것
처음에는 어른들 사이 문제와 다름 없이 너무 크게 생각하고 접근하기도 했는데, 너무 급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담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