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있는 용기-7] 사람이니까, 상처를 받는다.
몇 년 전, 교직 생활에서 가장 힘든 해를 버텨나가던 때였다. 같이 동화 공부를 하는 선생님이 김경희 선생님의 상담 연수를 추천해주셨다. ‘핵심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 존재의 중심을 찾는 방법을 연습하는 연수였다. 지푸라기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연수를 열심히 들었다. 상황이 너무 버거웠기에 연수가 나를 ‘구원’해주진 않았지만, 호흡에 집중하고 선생님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핵심 감정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면 아이에게 말을 걸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알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감정을 공부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닫고, 글로만 공부하던 버릇을 조금이나마 바꾸게 되었다.
핵심 감정에 대해 연수와 곁들여 읽은 책이 ‘감정의 성장’이었다.동화작가이자 정신과전문의인 김녹두 작가가 쓴 글이다. 책에 의하면, 핵심감정이란 ‘어린아이가 생의 초기 자신을 돌보던, 중요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마음의 상처, 좋지 않은 감정들이 치유되거나 희석되지 못한 채 마음에 남아 점점 단단해지면서 형성된 감정’이다. 같은 사건, 같은 경험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도 핵심감정 때문이며, 이 감정이 그 사람 삶의 전반적인 ‘분위기’ 를 좌우한다. 핵심 감정은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이기도 하고, 내 존재를 쥐고 송두리째 자꾸 흔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감정에서 한 걸음 떨어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알아차린다는 게 내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너무 못 알아채서 문제라는데, 나는 감정이 곧 나인 것처럼 감정의 파도를 그대로 맞으며, 끊임없이 물을 먹고 오르락내리락 휩쓸리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감정이 들면 가만히 지켜보고, 지나가기까지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부족했다. 나에 대한 믿음 역시 부족했다. 빨리 그 감정을 털어내고 해결하는 데 급급했다. 그런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고, 지금도 연습하는 중이다.
교사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알고 감정과 관계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물들게 된다고 한다. 행복한 부모, 행복한 교사가 스스로를 돌보면 아이들도 그 모습을 따라 산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단 교사 자신을 위해서 감정을 돌보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감정이란 게,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라가, 사회가, 세상이, 지금 건강하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걸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머물러서도 안 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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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순간에 내 좁은 시야를 조금 넓혀준 이야기가 있다. 신기하게도 선생님들에게 힘든 상황의 교실(또는 학교)의 느낌을 묘사하라고 하면 그 이미지가 각자의 핵심 감정에 따라 매우 다르다는 이야기를 상담 연수에서 들었다. 어떤 이는 시끄럽고 엉망진창인 아수라장을, 어떤 이는 미움과 적대감 가득한 공간을, 또 어떤 이는 답답하고 적막한 무덤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의 천국이 다르듯 각자의 지옥도 다르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지옥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내 감정은, 내가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감싸 안아주기 전까지는 계속 나를 뒤흔들고 들끓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종류의 사건, 아이들의 반응에 나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그 불안과 상처가 실체 없는 그림자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아닌지, 제대로 바라보고 싶다.
온갖 감정이 널을 뛸 때, 나는 가빠져 있는 숨을 고른다. 가장 편한 호흡이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 다시 호흡해 본다.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을 가진 내가, 당장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좀더 성장하려는 내 모습으로 존재할 수는 있다. 그렇게 나름의 최선으로, 매일의 나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