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산다-3 ]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볼 것.
작년은 길지 않은 내 교직생활에서 가장 힘든 해였다.아이들도 각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고, 어느새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나는 자정작용을 하지 못하고 똑같이 쓰레기를 던지면서 투쟁하고 있었다. 어설프게 힘을 쓰고 좌절하며 폭풍우 치는 바다 위 조각배를 탄 심정으로 하루하루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지만 매일 출근하기가 고통스럽고, 두려웠다.
처음에 아이들의 비행, 사이버폭력을 예방하고자 새 계정을 하나 만들고 그들과 친구 추가를 했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언어를 쳐다보기조차 힘들어져 그 계정은 접속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 정을 쏟고 잘 상담해보고자 깊숙이 다가가느라 더 전이가 된 것인지... 크고 작은 따돌림과 비난, 차별이 묻은 발언, 비행, 잘못된 인터넷 문화에 물들어 벌이는 언행들이 너무 생생하게 다 와 닿아서 토할 것처럼 힘들었다.
물론 지도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그해 애들은 처음엔 "우리 반 너무 조용하고 재미없다."고 한 애도 있었지만 "우리 샘 좋다, 우리 반 분위기 좋은 편이다" "담임 쌤 잘 만나서 내가 올해 잘하고 있다." 는 얘기도 했었는데..... 미묘한 따돌림의 분위기가 더 커지기 전 초반에 지도하니 그들 입장에선 충분히 라포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계속 간섭하는 게 되었다.
에너지 100 중 50에서 200정도는 수업 방해와 교실 붕괴를 막는 데 써야 했는데 내 상태는 자꾸 마이너스가 되었다. 노력해도 미묘한 따돌림이 끊이질 않아 우리 반 분위기에 대해 익명 설문지를 돌렸더니 이게 진짜로 익명인가 재차 확인한 후
"우리 샘은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게 문제다. 관심을 좀 꺼야 한다."
"약자를 지나치게 배려하고 감싼다. 오히려 차별 아닌가? 우리 반에 학교폭력이 있어도 쌤한텐 말 안 해줄 거임. 쌤이 오히려 차별하고 쌤이 안 좋은 말을 씀." 같은 말을 썼다.
어떤 아이는 내가 야단할 때 자기 화를 못 이겨 “쌤은 퇴직하시죠?” “쌤은 돈 땜에 쌤 한 거 아니예요? 쌤은 안 맞는 거 같은데요?” 그러기도 했다.
그렇게, 감정은 무척이나 거칠었지만 사실 그다지 약지 않고 솔직하며 마음을 숨길 줄 몰라 어찌 보면 순수한(?) 아이들이었는데... 언변에 능하고 유머러스하며 어느 정도 일탈은 반쯤 눈감아주고 믿어주었다면 나았을지도. 그러나 그만큼 대범하게 행동할 만한 자신감도, 그게 더 나을 거라는 근거도 내겐 없었다.
아니면 그들의 태도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내가 인상이 강한 남자이기만 했다면? 씁쓸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외부강사나 전담교사의 성별이나 인상에 따라 아이들 반응이 정말 달랐던 걸 보면. 역량을 어디서부터 채워야 할지, 아직도 정확한 길을 모른다. 경험과 고민, 그리고 그 결과가 축적되어 어제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작은 위로일 뿐.
사람은 원래 피드백이 있어야 힘이 나기 마련인데, 나는 특히 더했다.뭔가 추진할 때 고민과 망설임이 많고 노력 대비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 좀 큰 편이라서... 아이들 여럿의 긍정적인 반응을 반드시 봐야 그래도 잘 되어가고 있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6학년 즈음 특유의 '무반응'보다도 한술 더 떠 불평과 비난이 말버릇이 되어 있었으니 매일 기가 빠져나갔다.
요새 가르치는 아홉 살 아이들을 보는데 기분이 묘하다. 아직 자기 주장이나 독립심이 강하지 않으니 싸울 일이 더 적고, 그 대신 하나 하나 물어봐야 안심이 되는 아이들. 아주 웃음이 많은 데다 감정의 자정능력이 심하게 뛰어나고 잠깐 사이 금방 괴로움을 깜박 잊은 채 즐거움에 흠뻑 몰입하여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모습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종(?)의 생물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개인이 타고난 성격이 달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의 성격 특성은 많이 사라지는 듯하다. 마치 내 안의 어린이는 네버랜드로 떠나버리고 그 자리에 갑자기 불시착한, 심각한 표정을 가진 다른 존재가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덩치 큰 6학년 아이가 2학년에 비해 세상을 조금 더 많이 알고 있긴 하지만 아직 어렸을 때에 비해 생각하는 힘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상처를 많이 주고받아 아픔을 더 많이 간직하고 더 많은 가시를 뾰족하게 세우고 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세대에 대한 건강한 비판적 사고야 당연히 생기는 거지만, 열등감과 오는 공격성이 있는 아이들은, 그게 언제쯤 생겨나는 걸까?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나쁜 문화를 흡수한 걸까? '공부 상처' 와 자존감 때문일까? 어른들이 '효율성'을 위해 아이들을 몰아세우면서 준 크고 작은 상처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막막해진다.
2학년 아이들이 고운말 쓰기 단원에서 국어 활동 책에 있는 '듣는 이를 생각하여 알맞은 말하기' 문제를 풀었다.등굣길, 수업 전에, 친구들에게, 영양사 선생님께, 하굣길에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면 좋겠냐고 하는, 문제치고는 좀 출제자의 의도가 뭔지 애매한 문제였다. 문제가 뭐 있는지 그날따라 내가 미리 읽어보지 못했더니 질문이 많이 쏟아졌다. (그리고 어려워 보이니 처음부터 풀기 막막한 아이들은 귀찮아! 라며 울상이 되어 머리를 쥐어뜯기도..)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 : 저는 등굣길에 아무도 한 번도 안 만나는데 어떡해요?
옆에 있던 아이 : 에이~ 아침에 저번에 너 나랑 만났잖아!
글 쓰기 싫어하는 아이 : (당황) 아닌데 ...
교사 : 만약 생각이 안난다면, 만약 친구나 선생님 만나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서 써 보세요.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 : ....... (마지못해) 네..
책을 걷고 나서 아이들이 집에 간 뒤 검사를 하는데 아주 모범 답안을 아름답게 적은 아이들도 보였지만 날것 그대로의 생각이 드러난 결과물들이 많았다.
'등굣길'
누구에게 :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누구에게 :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 : 안녕? (더 자세히 쓴 아이들은 : 친구들아, 정말 반가워. 같은 말을...)
그런데 어떤 아이는
누구에게 :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 죄송합니다.
(교사 : ?!?!?! 얘 왜 이렇게 썼지)
다음 날 그 아이에게 물어보니.. 한참 망설이다 웃으며 말한다.
"어... 지난번에 제가요.. 아침에 학교 갈 때 뭐 잘못 한 게 있어서 그렇게 썼어요."
"아... 그랬어? 00이가 그런 적이 있구나! 근데... 이건 보통 때에 어떻게 인사할 건지 물어보는 문제야. 그럼 어떻게 할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한다고 적을래요."
답을 알고는 있지만 직관적으로 가장 강렬한 경험을 적었나보다. 그런 상황들이 재밌다.
'자기 전'
누구에게 :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 안녕히 주무세요.
그런데 어떤 아이는
누구에게 : 엄마
하고 싶은 말 : 사랑해요.
확인해 보니 이 아이는 아직 부모님한테 뽀뽀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는 아이다. 알아보니 이런 아이가 더 많지만, 그런 걸 하라고 하면 진저리치는 아이도 몇 있다. 나도 어릴 때 좀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툰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에게 공감이 된다. 너도 나중에 감정의 벽을 허무느라 마음 고생 좀 하겠구나. 아직은 그래도 어려서 말랑말랑한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내가 보였던 긍정적인 피드백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또
‘급식실에서’
누구에게 :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맛있게 먹자.
누구에게 : 영양사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 :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 영양사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 : 밥 먹을래요
응??
이 아이는 분명 급히 마구 문제를 풀었다. 빨리 풀어야 하는데 생각은 안 나고, 그러다보니....
그런데 6학년까지 쑥쑥 자라나도, 이런 비슷한 수준의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몸집이 컸다고 어른된 것처럼 보다간 큰코 다친다.
며칠 전 2학기 학급 임원 선거를 했다.우리 학교는 1학기에 2학기 임원을 미리 뽑도록 계획되어 있어서다. ‘하고 싶은 사람 일어서 봅시다.’ 하니 21명 중 11명이 일어난다. 평소에 아이들 말을 들어보면 회장 부회장이 되면 ‘주인공’이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한다. 아무리 봉사하는 직임을 알려주고 설득해 보아도 역시 소용이 없다. 저런....
‘자, 일단 다시 앉아보세요.’하고 물론 후보가 많다는 건 우리반에 적극적인 사람이 많다는 것이니, 무척 기쁜 일이다. 그러나 회장 부회장이 되면 겪을 수 있는 힘든 점은... 하고 다시 생생히 알려준다.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게 도와주고 누구보다 가장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하니, 특히 평소에 짝과 모둠 친구들과 많이 다투고 숙제를 매일 안 해오는 등 학교생활을 잘하지 못하던 사람은 학급 임원이 되어 친구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힘들 수 있으니 잘 고민해 보자고.
생각하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후보를 정하자고 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아까 일어났던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난다. 그럴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후보가 나머지 유권자보다 많은 가운데 선거가 이루어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평소에 매일 작은 일로 친구와 소리 높여 다투고, 숙제하기나 수업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자신이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가지고 후보로 나섰다. 아직은 쓰라린 실패를 겪은 경험이 많지 않아서 열등감도, 정확한 자기 이해도 별로 없는 나이니까 당연하다.
이런 저런 잡설을 썼는데, 애써 정리해 보자면... 극과 극의 반응을 비교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질풍노도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거세고 거친 감정 공격이 오가는 상황, 그리고 때로는 섬세한 상담이 필요한 상황. 반대로, 무구하고 날것의 반응을 하며 작은 것에도 에너지 넘치는 반응을 하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 그 상황에서 리더 역할을 할 교사는 같은 사람인데, 반응은 전혀 다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피드백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그들의 피드백에 일희일비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믿고, 작은 실수나 불쾌한 사건에 동요하기보다 좀더 온몸의 힘을 빼고, 억지로라도 여유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노력한다고 바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난 글에 쓴 것처럼 ‘자의식 과잉’이 될 필요는 없는 거였다. 그들에게 너무 감정을 이입해 기대하고 원망하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다가 필요할 때만 도움을 주는 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나을 수도 있다는 것.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죄책감을 느낄 시간에 좀더 기록하고 냉정하게 방법을 생각해 천천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쩌면 연륜일까. 부모의 적절한 역할도 그와 비슷하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