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산다-5] 누가 어린애인가 모르겠다
우리반 하교 인사말은 “사랑합니다.” 이다. 아이들이 먼저 할 때도 있고, 모르고 방과후 수업에 늦을까 달려가거나 그날 좀 많이 혼나서 속상할 것 같은 아이한테는 뒤꼭지에 대고 내가 먼저 크게 인사를 건네는 편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공손하게, 또는 즐겁게 이 인사를 한다. 그러나 벌써 약간 겉멋(?)이 든, ‘쿨하게’ 보이고 싶은 몇 꼬마들은 이 인사가 아무래도 어색한지 다른 인사를 한다.
“안녕히계세 요루나민씨 (어쩌구저쩌구 블라블라)~~~”
랩을 꼭 두어번 한 다음, 내가
“그래도 인사는 제대로 해야 하는 건데...”
하며 살짝 삐친 시늉을 해야 안녕히계세요~ 사랑합니다~를 마지못해 해주고 간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엔 인사가 약간 다르다. 일종의 스킨십이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다른 건 사회 분위기도 있고 워낙 내가 담백한 걸 좋아해서 안아주기 같은 스킨십 대신 나랑 꼭 하이파이브를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걸 악용(!)해서 엄청난 파워로 손을 얼얼하게 하는 아이가 두 명 있다. 처음엔 으이그! 아프잖아, 하면서 대충 받아주었지만 이게 반복되니 너무 아프기도 하고 살짝 짜증이 나서 그 아이들을 붙들고 인사의 중요성을 한참 연설했다. 오늘은 좀 낫겠지 기대했으나 아무 변화없이 계속 장난을 거는 것이 아닌가.
결국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선생님! 00이랑 00이가 또 선생님 손 세게 치려고 막 손 휘두르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그래? (속으론 뜨아!! 하고 그 꼴이 좀 우습지만 짐짓 모르는 체 하며 큰 목소리로)선생님은 이제 00이랑 00이는 인사를 안 해줄 거야.”
“왜요?”
“(엄숙하게) 이제 아프게 안 하겠지라고 굳게 믿고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는데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자꾸 속이고 도망치잖아. 선생님도 아픈 것이 정말 싫어. 그래서 이제 그 두 친구랑은 하이파이브를 해 줄 수가 없어.”
멀리서 내 목소리를 다 들은 그 두 명의 아이는 겉으로 태연하려 노력하지만 무척 섭섭하고 어찌할지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다.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그 아이들이 인사할 시간, “너희랑은 하이파이브는 이제 안할래.” “이번엔 진짜! 진짜! 살살할게요. 안 속인다니까요.” 하며 답답해 하는 두 아이. “그런데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계속 속았는 걸.” “이번엔 진짜예요.” 약간 울상마저 되려는 표정에 한 번 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알았어. 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런. 데. ...................
“짜악!!!”
후다닥~~
“야~~!!”
이럴 수가. 내가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 이 녀석들이 또 나를 속였다.
워낙에 아이들이 순진하니 내 감정연기(?)엔 속을 수밖에 없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아직 눈치라는 게 장착되지 않아서 ‘내가 이 정도 하면 선생님이 분명 화내겠지?’ 의 척도가 없는 아이들이라서 언제든지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역으로 내 꾀에 내가 당한 순간이었다.
끙... 다음엔 내가 이기고 꼭 부드럽고 정상적인 하이파이브를 받아내고야 말리라!!
결국, 그 다음번에는 정말 하이파이브를 절대 안 해준다며 버티고, 진지하고 까칠한 표정까지 곁들여가며 공을 들이기까지 했다.
그제서야 살살 치는 하이파이브를 해 준다.
아주 울며 겨자먹기, 옆구리로 찔러 억지로 절받기를 하는 나같은 선생. 흠.....
오늘도 또 아이들과 복닥이며 스스로의 유치함을 느끼고 반성하는 하루.
내가 옳을까?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미약하나마 조금씩 개선하려 노력하며 그렇게 사는 하루.
그렇게, 교실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