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 줍는 교실살이]12. 삼월 끝무렵, 우리 교실
꿈을 꾼다.
아이들이 서로 겁주거나 겁먹지 않고 믿을 수 있는 교실.
죽은 지식 대신 삶과 이야기를 배우는 교실.
어울렁 더울렁 함께 성장하며,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교실.
그러기 위해, 꾸준히 내 마음부터 비추어 본다.
작은 반짝임부터 줍는다. 자주 넘어지지만 또 그만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1. 아침시간 모습
얼마 전, 아이들에게 보여줄 글똥을 못 쓴지 오래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글을 꾸준히 읽어주는 아이가) 선생님, 요새는 글 왜 안 써요?"
"아.. 그랬네... 선생님이 좀 바빴나 보다. "
"(옆에 있던 차분한 아이가 위로하듯 씩 웃어주며) 선생님, 괜찮아요!"
"고마워..(왠지 감동)"
뭘 적어야 하나 하다가 아침에 번개 같이 이런 하소연 섞인 글을 칠판에 붙여 두었다.
시간이 부족해
공부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아침시간에라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알려주거나 읽어주고 싶은 게 많은데
늦게 오는 아이 챙기고, 청소하라고 하고,
떠드는 아이들 들어와 앉아서
조용히 독서 준비하라고 하고,
밀린 숙제 검사하고
뭐했는지 모르지만
어쩌고 저쩌고 그러고 나면
시간이 끝이다.
욕심부려도 소용이 없다.
수업 시간이 시작되고 나서
이상하게 별 것 안하고
분위기가 차분해질 때까지
시계를 보면 10분이 지나 있다.
내 탓 반 아이들 탓 반
수업 준비 더 열심히 재미있게 해야지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고,
충분히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것 같고
그렇다고 다같이 학교에 오래 있을 수도 없고.
요즘 고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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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아이 왈.
"선생님은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요~?"
요즘 시를 읽다가, 이런 일도 있었더랬다.
첫날에 너희 분명 즐겁게 읽었잖아.
오늘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상처받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좋... 좋아, 자연스러웠어.
#2. 점심시간 모습
3월 초, 우리 반 아이들은 여럿이 함께 놀이를 몇 번 하고 나서 남녀 가르지 않고 많은 수가 어울려 바깥에서 같이 노는 재미를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전부 다 밖에 놀러 나가서 실컷 놀고 오는 점심시간이 반복되었다.
급식실에서 나는 보통 우리 반 아이들보다 늦게 식사를 마치게 된다. 아이들이 무엇 하고 있나 걱정하며 교실에 올라오곤 했는데, 그러면 거의 두 세명 밖에 없거나 심지어 교실이 아예 텅 비어 있었던 적도 있다. 잘 놀고 있는지 슬쩍 동정을 살피러 교정을 거닐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해맑게 잘 놀았다. 수업 시간에나 교실에서 쉴 때에는 오히려 튀는 행동, 적응하지 못하는 행동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놀이를 하는 동안 별 다툼이 일어나는 적이 없다. 놀이할 땐 양보와 배려가 특히 잘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신기했다.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크고 작은 갈등을 잘 해결하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생각보다 '놀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한 달 동안 밖에서 실컷 뛰놀고 나니 이젠 뛰놀기도 조금 시들해졌는지, 점점 교실에서 노는 쪽으로 놀이를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공놀이. 실내에서 안전 때문에 공놀이는 금지했지만, 교실에서 작고 폭신한, 천으로 되어 있는 아기 주먹만한 공은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던지고 받으며 놀게끔 허용했다. 그랬더니 그걸로 나름대로 캐치볼 흉내를 낸다. 밖에서 놀면 더 재미있게 제대로 놀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밥을 먹고 4층에서 신발을 갈아신은 뒤 다시 1층 야외로 내려가는 게 몹시 귀찮단다. 그 작은 공을 점심 내내 주고 받으면서 즐거워 하는 게 신기하다.
그 다음은, 아이들이 만들어낸, 개그맨 지망생 놀이. 한 명씩 개그맨 지망생이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면접관이 되어서 얼마나 웃긴지 평가하는 놀이라고 한다. 배꼽을 잡으며 신나게 잘 논다. 한 번은 내가 온 줄 모르고 한 여자 아이가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서 몸짓과 웃긴 목소리로 열심히 개그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내가 온 걸 보고 웃겨서 마구 웃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고 무릎에 힘이 풀려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했던 일이 두고 두고 재미있었다.
내가 보기엔 금방 질릴 것 같은 보드게임을 매일 안 질리고 집중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 휴대폰 게임을 흉내내서 몸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엉겨붙고 레슬링하듯 노는 게 취미라 나는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잠시 안 보는 사이에 자꾸 반복하고 계신 분들이다.
아이들 노는 것 구경도 재미있고, 때론 같이 놀기도 하지만, 밥 먹고 나서만큼은 좀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이 있다. 교실에서 조용 조용 놀던 아이들이랑만 빈 교실을 누렸었는데, 교실이 복작복작해지니 귀가 멍멍하고, 솔직히 조금 아쉽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섭섭해 하려나?
어제, 이 만화 그림을 칠판에 붙여두니 아이들이 왜 선생님만 예쁘게 그렸냐고 한다. 어떤 부위가 예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