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 진로교육 도전기 : 직업 경매를 시작합니다
"다음 주에는 직업을 살 거예요. 돈 많이 모아두세요."
바둑돌 시스템에서 가장 큰 고민은 직업을 어떻게 정할지였다. 실제 사회에선 직업에 어울리는 사람을 시험이나 면접을 통해 뽑는다.
이를 학급에 적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닥 닦이를 선발하는데 걸레를 얼마나 잘 빨아오는지, 미는 힘은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며 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약 스무 개의 직업을 그렇게 정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처음엔 직업과 주급을 정하고 가위바위보를 통해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조금 더 현실을 반영하고 싶었다.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하는데도 돈이 필요하고, 창업을 위해 빚까지 진다. 직업을 돈으로 사는 건 어떨까.
현실에선 말이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은 일도 못하나?! 하지만 돈이 없다면 정부에서 '특별 대출'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돈이 없어서 직업을 못 갖는 경우는 없다. 빚을 지면 열심히 일 해서 갚아 나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직업을 이제는 사야 합니다. 만일 경쟁이 붙으면 어떻게 할까요?"
"경매 하나요?"
경매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아이들 입에서 먼저 나왔다.
"맞아요. 직업을 경매할 거예요. 최소 2개부터 시작합니다.
중간에 너무 힘들거나, 직업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으면 다시 팔수 있어요.
그때는 '명예 퇴직금'으로 처음에 투자했던 돈의 절반을 돌려줄 겁니다."
최대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명예 퇴직금' 개념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배식이 직업을 8개에 샀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그만 두면 명예 퇴직금으로 4개를 받을 거예요.
홀수면 하나를 더해서 절반을 줄거예요.
9개를 투자했다면 10개의 절반인 5개를 줄 겁니다."
"한 번 직업을 가지면 끝까지 가나요?"
"1학기 까지 갈 거예요.
만일 1학기 끝날 때까지 직업을 안 바꾸고 끝까지 수행하면 퇴직금으로 그 직업 주급의 2배를 줄 거예요."
"우와~"
바둑돌 한 개, 한 개가 소중한 시점이다.
사실 1학기 끝날 때 즘이면 인플레이션 때문에 퇴직금은 얼마 안 되리라.
"하지만 해고 당할 수도 있어요.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경고를 줄 거예요.
경고 3번이면 명예 퇴직입니다."
"직업은 몇 개까지 가질 수 있나요?"
"몇 개까지 하면 좋을까요?"
"2개요."
"3개요."
"너무 많이 가지면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 같아요.
지금도 주급 10개인 친구랑 5개인 친구랑 차이 많이 나요."
"투표합시다. 최대 2개와 3개 중 하나를 골라 주세요."
그 결과 최대 2개까지 가질 수 있도록 결정됐다.
"돈이 없으면 어떡해요?"
"이번엔 특별히 중앙 정부에서 대출을 지원할게요.
대신 대출한 사람은 이자까지 함께 갚아야 해요.
1~5개는 이자 1개, 6~10개는 이자 2개, 11~15개는 이자 3개.
이런 식으로 5개 당 이자 1개입니다.
만일 15개를 빌렸으면 갚을 때는 몇개를 갚아야 하나요?"
"15개에 이자 3개를 더해서 18개요."
"맞아요. 혹시 더 질문 있나요? 없으면 시작할게요."
드디어 경매 할 차례다. 처음에는 최저 주급이 5개, 최고 주급이 10개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고 주급을 8개로 줄였다.
빈부 격차가 너무 난다는 아이들 의견을 반영했다.
"캡틴 쓰레기카 시작합니다. 2개!"
최고 인기는 학급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와 주급 8개의 '바닦이'였다.
2개로 시작한 경매금액이 모두 17개까지 뛰었다.
특히 분위기 메이커 경매 때는 한 아이가 경매 가격을 올리려 일부러 손을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직업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문득 이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말을 덧붙였다.
"자신이 그 직업에 관심이 없으면 손을 들지 마세요. 괜히 하고 싶은 사람만 못할 수 있습니다."
경매가 끝났다. 대출 때문에 수많은 돈이 풀렸다.
"17개 언제 갚아?"
분위기 메이커를 산 아이가 씩씩댄다.
"열심히 일 하면 갚을 수 있어. 빚 갚는 경험도 굉장히 중요해~"
어떻게든 현실과 연관지으며 활동을 마무리해본다.
투자&기부
"세상에 없는 개념을 도입할게요."
아이들 눈빛이 반짝거린다.
"투자는 무언가를 얻으려고, 나를 위해 돈을 내는 거예요.
기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돈을 내는 겁니다.
이 둘을 합쳤어요.
투자&기부로 70개 모으면 체육놀이, 100개가 모이면 과자 파티를 할 거예요."
그 어떤 때보다 반응이 좋다.
"여기에 돈을 내는 것은 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반 친구들을 위한 마음도 있을 거예요."
이번 경매와 함께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을 했다.
우선 쿠폰제를 도입했다.
점심시간 신청곡 1곡 : 바둑돌 1개
신청곡 SET(점심시간 신청곡 6곡) : 바둑돌 5개
급식 1등 : 바둑돌 2개
일주일 급식 1등 : 바둑돌 7개
점심시간 핸드폰 사용권 : 바둑돌 4개
도입하자마자 가장 인기있었던 건 신청곡이었다. 첫날부터 신청곡 SET가 팔렸다.
"선생님, 근데 핸드폰은 6학년 전체가 금지 아닌가요?"
"아, 맞네.. ㅎㅎ"
핸드폰 사용권은 학년 규칙에 따라 폐지됐다.
에필로그 : 직업 카드
"모든 직업에는 자신을 나타내는 증명서가 있어요. 예를 들어 선생님은 교직원증이 있어요."
작년에 전역하고 받은 교직원증을 목에 걸어본다.
"명함, 사원증, 공무원증처럼 여러분 직업을 나타내는 직업 카드를 만들어 볼게요."
이제야 제대로 시작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