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 진로교육 도전기 : 가계부를 쓰고 아르바이트를 해요
학급 화폐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위조지폐다.
"선생님이 혹시나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설마 집에 있는 바둑돌을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마음먹고 집에서 바둑돌을 가져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만일 집에 있는 걸 가져오는 건 실제 사회에선 어떤 거에 해당될까요?"
"위조지폐요."
"맞아요. 그건 위조지폐고 불법 행위예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
단단하게 일러두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문득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첫날에 공책 3권을 가져오라고 했던 거 기억하나요?"
"네."
"그중 한 권은 가계부로 쓸 거예요."
가계부 도입
가계부는 수입과 지출, 잔액을 기록한다. 가계부의 목적은 여러 가지다. 우선 바둑돌 시스템 적응을 돕는다. 학생들은 날마다 일당을 받기 때문에 매일 수입 칸에 최소 1개를 적을 수 있다. 세금을 내면 지출 칸에 '1(세금)'을 적으면 된다. 수입과 지출을 썼으면 그 옆에 바로 잔액을 적는다. 날마다 적기 때문에 자신의 바둑돌 현황을 알 수 있고 시스템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위조 가능성을 낮춘다. 가계부 잔액과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바둑돌 개수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져온 바둑돌을 가계부에 뭐라고 쓸 것인가?
"가계부는 크게 세 가지를 쓰면 돼요. 소득(수입), 소비(지출), 잔액. 공책을 세로로 3줄 그어서 4칸을 만듭니다.
맨 왼쪽 칸에는 날짜를 씁니다. 3월 11일. 좋아요.
그다음 두 번째 칸 맨 위에 소득(수입)을 씁니다. 그리고 그 칸에 나가는 여러분 소득을 쓰면 돼요.
세 번째 칸 맨 위에는 소비(지출)이라고 씁니다. 거기다가는 여러분이 돈을 얼마나 썼고 어떻게 썼는지 적으면 돼요. 예를 들어 세금으로 1개를 냈으면 지출 칸에 1(세금)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칸 맨 위에는 잔액이라고 적습니다. 수입은 더하고 지출은 빼서 현재 여러분 손에 남아있는 바둑돌 개수를 적으면 돼요."
처음이라 낯설어 한다. 사실 나도 이 모든 시스템이 낯설다. 가계부를 이렇게 가르쳐도 되는가 싶다.
"오늘 일당을 받아 볼게요. 소득 칸에 얼마를 쓰면 되죠?"
"1이요."
"맞아요. 1을 쓰고 지출 칸에는?"
"1이요."
"그렇죠. 오늘 세금 내는 날이니까. 1(세금) 이렇게 적으면 됩니다. 그럼 잔액 칸을 알아봅시다. 어제 1개 벌고 쓴 거는 없으니까 어제 잔액은 몇이에요?"
"1이요."
"그럼 어제 잔액에 오늘 수입을 더하고, 지출을 빼면 오늘 잔액이 나오겠죠?"
덧셈, 뺄셈을 가르치듯 하나하나 차분히 얘기했다.
"어제 잔액이 1이고, 오늘 수입은 1이니까 더하면 몇인가요?"
"2요."
"오늘 지출은 1이니까 잔액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2에서 1을 빼면 돼요. 오늘 잔액은 1이에요."
물론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따로 불러서 차분히 설명해줬다.
"앞으로 이렇게 가계부를 쓰면 됩니다."
"알바 할 사람?"
현재 아이들은 직업 활동으로 얻는 주급으로만 돈을 벌 수 있다. 조금 더 흥미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다 더러운 교실 벽이 눈에 띄었다.
"오늘 점심 먹고 알바 할 사람?"
생각보다 아이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슨 알바요?"
"얼마 줘요?"
"언제까지 해요?"
수업 시간에 볼 수 없는 빛나는 눈들을 마주쳤다.
"교실 벽에 더러운 것들을 닦으면 돼."
나는 미리 준비한 매직 블록을 보여줬다.
"알바 수당은 4개다."
특별한 인원 제한을 하지 않고 할 사람들을 모았다. 10명 조금 넘게 모였다.
"점심 먹고 12시 50분부터 닦아 보자."
정말 열심히 닦았다. 돈을 받고 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길 바라본다.
"여기까지~! 고생했어요."
"선생님 알바비는 언제 줘요?"
기다렸던 질문이다.
"가계부 써 오면 바로 줄게요. 소득 칸에 4(벽 닦기 알바)라고 적으면 됩니다."
에필로그 : 과자 판매
"약속대로 오늘부터 과자를 팔 거예요."
출근길에 학교 근처 마트에 들러 과자를 샀다. 생각보다 비싸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얼마에 팔 것인가다. 일단 질러봤다.
"마이쮸 2개에 바둑돌 1개. 쿠크다스 1개에 바둑돌 1개. 크라운 산도 1개에 바둑돌 2개입니다."
(학용품도 같이 팔았다. 가격은 모두 1개.)
"선생님, 마이쮸 4개 주세요."
"선생님, 쿠크다스 1개요."
"선생님, 크라운 산도요."
"선생님.."
"가계부 써 오면 줄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가계부 지출 칸에 세금 말고도 적을 콘텐츠가 생긴 점도 좋다. 이렇게 팔 때마다 가계부를 적게 하면 가계부 적는 습관도 빨리 가질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사기 전에 글로 적으면 충동적으로 사지 않겠지.
"어, 마이쮸 다 팔렸네."
"선생님, 쿠크다스 더 없어요?"
"선생님, 다 팔린 거예요?
하루만에 다 팔렸다.
아무래도 가격을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