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필요치는 않다
올해 저는 처음으로
학부모님들에게 학생들의 기초 조사표를 받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보다가
예전과는 다른 독특한 점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장래 희망:
'아이의 꿈을 응원합니다', '아이가 바라는 모든 것',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
저희 반 학부모님 26분 중 10분이 이러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장래 희망이 의사, 검사, 교사 등으로
주관이 확실했었던
저의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전보다는 학생들이 보다 다양한 꿈을 꿀 수 있고,
자신의 적성을 찾아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처음 교사가 되면서
‘나도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처럼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게 될 ‘아이들을 위해’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다소 힘들지라도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하고
최선을 다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저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작 아이들이 바라는 좋은 교사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아닌데...
‘아이들을 위해’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부부가 자기 욕심으로
서로 싸우면서 돈을 들여 아둥바둥 아이를 키운다고
그 아이가 잘 되는 것이 아니듯이,
교사 역시 자기 욕심으로
많은 일을 하며 바쁘게 산다고 해서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면
아이들이 공부는 못해도 결국 나중에는 다 잘 되는 것처럼,
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좋은 교사가 되고자 하는 노력 역시
그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초 조사표에서 나타난 학부모님들의 마음처럼
교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때로는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힘든 일도 많겠지만
그래도 너희가 있어서 나는 참 좋다, 행복하다라는 생각.
때로는 잔소리에 지치고, 화가 날 때도 있겠지만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너희가 있어서 내가 사는 재미가 있고,
너희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다라는 생각.
이러한 것들이 바로
좋은 교사가 되게 하는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좋은 교사가 되려는 노력은 물론 중요하겠지만
내가 꼭 많은 것을 갖추었을 때만이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이제는 조금씩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이 필요치는 않다.
튼튼하게 쉬지 않고 내 의지로 걸어갈 열정과
아이들과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엉거주춤 배구를 할 수 있는 웃음과
도란도란 같이 앉아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경제력.
우리는 언제나 너무 많이 고민하며
다가갈 시간을 놓쳐버리며 살고 있다.
-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