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기쁨
겨울 오면은 우리 둘이서
항상 왔었던 바닷가
시린 바람과 하얀 파도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나의 곁에서 재잘거리던
너의 해맑던 그 모습
이젠 찾을 수 없게 되었어
- 터보의 「회상」 中 -
오래 전부터
겨울 바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겨울에 바다에 가서 바닷 바람을 쐬면
낭만적일 것 같고,
분위기 있을 것 같고,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환상.
하지만 그 환상은
늘 바쁘고, 여유롭지 않았던 마음 때문에
깊은 곳으로 가라 앉았다가
가끔 TV를 볼 때면 한번씩 떠오르고는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인생에서 다시 올 줄은 몰랐었던 긴 휴가를 얻었습니다.
교대 입학을 위해
다시 수능 시험을 마치고 얻은 긴 휴가.
00학번이었던 제가
16학번이 되기 위해 힘든 공부 후 얻은
지나칠 정도로 긴 휴가.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이 때 만큼 몸과 마음이 편한 시기는 많이 찾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선물을
그냥 이대로 보내서는 안될 것 같아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여러 음식을 먹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었을 때,
그 동안 머릿 속에서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겨울 바다에 갔습니다.
광안리 해수욕장.
멀리서 바라봤을 때
조명이 비춰져 있던 광안리 바다는 역시 예뻤습니다.
그 기분을 만끽하고자, 더 가까이 가기로 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지나 모래사장을 밟고,
바다 바로 앞까지...
하지만 철이 지난 바다는
제 머릿 속에 있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황량함.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방치되어 있는 시설물들.
무엇보다 도저히 낭만을 즐길 수 없는
강력한 추위.
겨울 바다에 발을 들여놓은 후,
10분도 안 되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점들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때로는 기대와 환상만 가지고
너무 가까이 다가갔을 때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입니다.
지금은
친구 사이에도
이런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개인적인 부분들에 너무 깊이 개입했을 때
서로 실망하고 상처받는 순간들.
내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가만히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는 순간들.
가까이 다가가기보다는
그냥 옆에서 바라봐주어야 하는 그런 순간들.
그것은
연인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또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것을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사랑을 가지고 다가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신규 교사의 열정만 가지고
학생에게서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바꾸려 하고,
지나친 기대를 하기보다는
학생이 존재하는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아끼고 사랑하며 바라보는 기쁨도
누릴 줄 알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