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다] 하지 못했던 말
애초에 이 연재를 기획할 때는 나를 거쳐갔던 학생들 중 내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교사에게는 마음 속에서 떨쳐내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 아쉬움 중에 가장 큰 영역은 바로 학생에 대한 것이겠지요.
사람 관계가 참 어렵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저는 이 어려운 관계를 애써 유지하려는 마음을 고이 접었습니다. 욕심을 버렸다고 해야할까요, 아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해야 맞을까요. 고등학교 시절 반편성 발표가 개학 전날에도 나지 않아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기억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편성 발표를 하지 않느냐고. 수업 대신 정치적 발언을 일삼아 학생들에게 편향된 가치관을 주입하려던 양 측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여 지역 일간지에 글을 기고했던 과거도 떠올려 봅니다. 돌아보면 부당함에 대해 거침없는 표현을 쏟아 냈던 제 자신을 감추고, 교직사회가 추구하는 부드러움과 원만함의 분위기에 젖어 저의 가치관을 숨기고 성장마저 더디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혁신학교로 전입하기 전, 같이 근무하던 학교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학교에 가서는 네 목소리를 내라, 경력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해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했던 지난 2년의 모습을 돌이켜보니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저를 불편하게 생각했을지 걱정마저 되었습니다. 이 걱정이 1분 이상 지속되면 저는 제 가치관을 포기한 것이 되겠지요. (^^)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고, 이것이 충분하게 실현되는 과정을 경험하며 교사로서 한층 더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성장의 시간이 무한히 지속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동료와의 관계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저는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제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어떠한 지적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적을 기다렸으나 그저 그런 눈빛으로 넘어가는 모습, 학교 행정과 문화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면서도 옆 반 선생님의 학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관계를 포기했지만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교사와 학생에 대해서는 전혀 토론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글들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학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비판받고 싶어 쓴 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저 스스로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떳떳하지 못한 제가 알아서 과거를 밝히는 것이 우습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저도 학생도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니 성장에도 한계가 있겠지요.
애초에 기획했던 것은 아래와 같지만, 3명의 학생을 다루지 못했습니다. 현재 진행형이거나, 글을 쓰다보니 너무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언제고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여유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내게 되겠지요. 그리고 저는 한층 더 성숙해 나갈 것입니다.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준 이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물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의 삶, 나와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제 자신을 스스로 돌아봅니다. 수학을 참 못했던 교사, 그래서 수학을 보다 열심히 연구하는 교사. 좋은 선생님이라 착각했는데 어느덧 교직에 들어와보니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던 제 경험, 아직도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는 J에 대한 미안함, 어쩌면 나와 비슷한 분노를 가졌음에도 더 헤아려주지 못했던 K,,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함과 고마움을 다시 한번 전합니다.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던 Y, B, 그리고 E에게.
어디서 무얼 하든 너희를 응원하마.
싫었던 기억과 실망감을 언젠가는 나에게 꼭 전해주기를.
나를 보며 그냥 모른척 지나치지 않기를.
꼭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게 기회를 주면 좋겠다.
2019년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