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다] 수학을 싫어하던 K
메신저를 켜고 8명이 넘는 동학년 선생님께 쪽지를 보냈다.
"선생님, 축하해 주십시오. 우리반 K가 3회에 걸친 보충 평가에서 드디어 통과했습니다!"
3월에 친 기초학력평가에서 수학만 한참 모자란 점수로 미도달을 받은 K는 오랫동안 나와 수학을 공부했다. 처음엔 힘들어했지만, 2달, 3달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지난 후에도
남아서 공부했다. 덕분에 방과후에 남아 있는 것이 익숙해졌다.
K는 별다른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부모님도 크게 아이의 학습을 신경쓰지 않았고, K 또한 학업이 조금 안 될 뿐 친구와의 관계가 좋았으며 어른에 대한 예의가 바른 친구였다. 또래에 비해 체구가 왜소했지만 말하는 것은 성숙했으며, 재치도 있으면서 말수는 적은 편이라 친구들이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피부는 하얗고, 미소는 귀여우며 어른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한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런 K는 사실 교사에게 가장 편한 스타일의 학생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교사가 가장 책임있게 봐야 할 학습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착해서 말썽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K에게 내가 방과후 동안 가르쳤던 수학은 어쩌면 지옥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너무 간단한 문제를 풀지 못하는 녀석을 관찰하면서 수학에 대한 정의적 영역이 매우 낮다는 사실과 함께, 수학 문제만 보면 초점이 흐트러지면서 다른 곳을 보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차례 말로 달래고 재밌는 말로 집중하도록 여겼지만, 1달이 지나도 습관이 바뀌지 않자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벌써 수년 전의 일이긴 한데,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남았으니 나의 화도 그만큼 누적되어 있었다. 그날 K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죽 답답했으면 눈물을 흘렸을까. 집에 돌아가며 K를 다그친 내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주변 동료나 친구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았지만 별다른 위로가 되지 않았다. 교사라는 집단이 그렇다. 누군가가 자기 잘못을 고백하면 '너 왜그랬냐, 그러면 안 되지'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이가 잘 없다. 비판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참는 것인지, 비판했을 때 동료가 느낄 마음의 상처가 걱정되는 것인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나와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것인지, 아님 나의 행동이 어리석다고 속으로 비웃고 있는지, 그땐 정말 궁금했다.
수학을 못했던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동네 보습학원에 갔다. 그 때 당시 세로셈으로 하는 나눗셈을 제대로 하지 못해 굉장히 애를 먹었는데, 학원에서 상담을 받는 과정을 통해 나눗셈을 푸는 방법을 깨닫고는 학원의 묘한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이후로 보습학원을 4~5달 정도 다녔다가 지겨워 그만두었는데 - 그렇게 간단히 배우기만 해서는 수학실력이 나아질 리 없었다. 학교 수업을 들어도 수학은 어렵기만 했다. 쉬운 공식을 놔두고 왜 저렇게 어렵게 가르치는지, 그 어린 나이에도 '학원의 매력'에 빠져 학교 수업을 싫어하기만 했다. 게다가 6학년 담임 선생님은 교무부장이라, 당시 학교에 들어왔던 컴퓨터에 빠져 업무를 처리하기에 급급하셨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2~30분을 혼자 풀고, 친구들과 떠들다가 10분을 남겨놓으면 칠판 앞에 서서 문제를 풀이하셨고, 수업과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나 공식 등을 설명해주셨다. 왜 저런 식이 나올까? 왜 분모와 분자를 거꾸로 바꿔서 곱할까? 이런 질문을 물어볼 용기도 없었고, 설명해줄 사람도 없었다. 가끔은 풀리지 않는 수학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화가 났지만 이 화를 풀어줄, 호기심을 충족시킬 기회가 나에겐 전혀 없었다.
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진학생을 돌봐줄 학교 수학선생님은 찾기 힘들었고, 학원은 가급적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님의 방침도 답답함을 증가시켰다. 가끔은 너무 화가 나면 눈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는데, 이 화는 문제를 못푸는 나에 대한 화와 함께 원리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교사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가까스로 혼자, 또는 주1회에 한 번 다니던 단과학원의 힘을 빌어 겨우겨우 따라갔다. 친절하게 원리까지 설명해주는 단과학원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기초가 해결되지 않는 수학은 모래 위의 성이었다. 교단에 나와 초등학교 수학을 가르치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던지라, 수학을 못하는 K의 앞날이 너무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그 아이의 인생에 어쩌면 수학은 필요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당시엔 전혀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니까, 의무교육이니까, 나처럼 수학을 못해도 수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런 만일의 인생에 대비하여 기초만은 쌓아주자,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결과는 그 아이의 눈물이었다.
부모도, 교사도 본인이 해내지 못했던 과거의 일에 아쉬움을 느껴 자식이나 학생을 통해 이를 '성취'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마음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내가 갑갑했으니, 이 아이는 갑갑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마음 이전에, '지금' 이 순간에 아이가 느낄 당혹감, 싫증, 부담감을 고려하였다면 좀 더 쉬운 교육이 되지 않았을까? 마음 속 한 켠에 늘 아쉬움이, 또한 그 학생의 얼굴이 남아있다.
수학을 가르치는 순간다마 K가 떠오른다.
K를 다그치는 나에게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