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다] 학생들을 돌아보며
연재를 고민하며
지금껏 교사가 지녀야 할 제1의 덕목은 수업이라 여겼습니다. 수업이 나와 학생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한 차시씩 분절된 교과서의 교재 내용을 여러 방법으로 고민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수업을 통해 학생과 만나고, 학생의 지적 성숙을 돕고, 기초학력을 쌓아 학생이 원하는 것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나의 노력을 잘 알아주고 따라와주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만치 멀어지는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애써 수업 속으로, 교육으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민으로 자라나도록 도와주는 과정에서 저는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드는 개인적인 생각과 아픔이 더이상 반복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수업을 잠시 뒤로한채(어쩌면 모든 학생을 위한 수업을 꿈꾸면서?)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학생들 뒤에 내가 서있다
맛있는 것을 사달라며 연락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들과 만나는 것은 행복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쓸쓸합니다. 그 아이들과 같은 반에 있었던 다른 학생들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나는 분명 나에게 연락오는 학생만큼, 그 아이에게도 정성을 쏟았는데 왜 나를 찾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과, 혹시나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과 걱정 때문입니다.
수학을 못했던 저는 수학만 만나면 두려워하는 A 학생에게, 교사로서의 책무를 다한다는 이유로 방과후에 남겨 지도했습니다. 저처럼 가족과 다양한 체험학습을 하지 못했던 B학생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B와 저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갈만한 곳으로 사제동행을 다녀왔습니다. 또 저처럼 축구를 잘 못해 친구들과 체육 시간만 되면 의기소침해지는 C학생을 위해, 제가 직접 축구에 참여하여 일부러 그 학생에게 패스를 주고,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사는 자신이 성장했던 배경을 바탕으로 모든 학생을 돌보게 됩니다. 정을 쏟아 부었던 학생들, 심하게 야단쳤던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그 학생의 뒤에는 어린 제가 서있었습니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학생을 압박한 것은 아닌지, 나 또한 어리숙하고 실수가 많았던 것을 까먹고 학생에게 잘하라고만 강요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번 연재는 제가 애틋하게 생각했던, 그리고 쉽게 잊지 못할 학생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결국 저를 돌아보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겁쟁이처럼 스스로를 직면하지 못하고 학생에게 투사하는 이 버릇이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길 소망해 봅니다. 그리고-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오늘 우리반 학생들 뒤에 서 있는 나의 어린 모습을 떠올리며 잠깐의 여유를 가져 봅니다.
다음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