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다] 가정방문을 하지 못했던 J
교원능력개발평가가 한창이던 그해 나는 한 학부모로부터 폭력교사라는 소릴 들어야 했다.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이 엄한 편이니 애써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참 씁쓸했다. 나는 지금도 그 배경을 J와 관련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그 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J는 저학년 때부터 결석이 잦았다. J를 맡았던 학급 담임들 대부분은 학부모와 연락이 잘 되어서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겉보기에도 마르고 약해 보여서 자주 아프다고 생각했나보다. 가정 사정을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담임 교사가 보기에 '학교를 거를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 눈에 보인 듯 하다. 나는 그런 결석 행위를 그냥 받아들이지 못했다. 꿋꿋하게 결석체크를 하고 이것을 모두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기록했다. 1학기 말에 그 학생이 받은 결석 횟수는 심각했고, 2학기에도 1학기와 비슷한 패턴으로 결석하게 된다면 유급이 확실했다. 이렇게 학교를 자주 빠지는 학생을 친구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친해질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가끔 학교를 온 J는 너무 강해 모둠활동을 하는 친구에게 매서운 지적을 하기 일쑤였다. 내가 보기엔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지만, 친하지 않은 친구의 지적에 어쩌다 한번 학교를 오는 것이 다른 아이들에겐 불쾌했을 법 했다.
원칙대로라면 나는 그 아이의 집에 가정방문을 가야 했다. 학교에 자주 보내지 않는 그 사유도 의심스러웠고, 결석횟수도 너무 잦아 가정방문이 필요했다. 주변에선 나를 만류했다. 괜히 젊은 남교사가 여학생 집에 찾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당시 퇴임 2년을 남겨둔 채 대안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원로 선생님께서 나를 대신해 아이의 집을 방문했다. 대충의 사정을 전해 들은 나는 그제서야 학생이 왜그렇게 결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아이를 보호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조금 미숙한 것을 주변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싫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뻔히 내 눈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 학생을 따돌리는 행동을 보여 내가 무척 화를 냈다. 그 아이들도 그저 아이들일 뿐인데, 약자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너무 불쾌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은 J가 처한 환경이 '약자'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J를 배려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불같은 화를 내었다. 감수성 예민한 6학년들이니, 집에 가서 나를 좋게 평가할 리는 없었다. 평가는 냉혹했다. 나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다른 학부모 그룹이 없었다면 정말 난감했을 상황이었다.
결석이 잦아서 괴롭힘의 지속성이 유지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일까? 학생은 결석 이유로 친구들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했지만, 그와 더불어 학교에 오지 않는 더 큰 이유가 부모에게 있었다. 나는 부모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 아이의 결석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부모는 유급될 처지에 놓인 학생의 사태에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달았고, 어찌된 일인지 나와의 소통보다는 가정방문을 했던 선생님과 더 많은 소통을 시도했다. 그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고 그 아이는 더 좋은 주거환경을 찾아 이사와 전학을 동시에 하게 됐음을 알려왔다. 언제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J는 그렇게 우리 반을 떠났다. 나는 '언제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해'라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그 후에도 가끔씩 소식을 물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학생은 누구나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사가 부모와 가정환경을 바꿔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학교를 거부하고 점점 늪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학교로 들어오는 수많은 책무와 역할 기대 속에서도 학교 자체를 거부하고 배움의 기회를 잃어가는 사각지대의 아이들을 구해내는 일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날이 갈수록 J와 같은 아이들의 배경과 사연은 매우 다양해지고, 그 수도 늘어나고 있다. 학생 수는 줄어만 간다는데 어려운 학생은 더욱 늘어나기만 한다. 다시 또 J와 같은 환경의 아이를 만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교직은 경력을 절대시하는데, 경력이 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슬프다. 학교가 무엇을 하는 공간이든, 학생이 학교로 와서 행복한 삶을 꾸려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와 소통을 하기 위해 둘 만 나누는 일기장을 쓴 적이 있었다. 나 대신 가정방문을 했던 선생님께서 '먼저 선생님을 공개하면, 아이도 마음을 열 것'이라며 공동일기장을 제안하셨다. 나는 그 덕에 아이가 왜 학교를 거부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학교를 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도와달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나는 아이를 만나러 가지 못했다. 아이는 나를 만나는 부끄러움보다 나를 기다린 간절함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아이를 해마다 만나면 나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여러 아이들이 있다. 내가 수준 높은 도덕을 지녀서도 아니고, 아이를 모두 케어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서도 아니다.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항상 아이들의 처지에서 나와 내 친한 친구들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