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비추다] 나를 좋은 교사라 착각하는 제자 L (1편)
흔치 않은 일이지만, 11월부터 2월까지, 그것도 방학을 포함하여 약 4개월 만 맡은 제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졸업을 시켰다. 그 때 아이들이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데, 그 중 5명을 올해까지 매년, 매학기마다 만났으니 그 인연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며칠 전 그 학생 중 한 명이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긴 장문의 편지를 썼고, 늘 보던 녀석의 편지에 새삼 그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그리고 지금을 회상했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해보는 것, 앞으로 어떤 존재로 그 아이 앞에 서야 할지 생각해보느라 한참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음으로 존경했던 선생님을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느끼는 상상 이상의 실망감을 이 아이만큼은 안 느꼈으면 하는,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그 반에서 나는 3번째 담임교사였다. 처음 담임교사는 개인건강 문제로 휴직하셨고, 잠깐 기간제로 왔던 젊은 선생님은 무슨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동학년 선생님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고 들었다. 담임이 바뀌는 동안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는지, 흔히 말하는 '교실 붕괴'의 수준에 이르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담임선생님이 수업을 해도 듣지 않고 떠들기 바빴으며, 몰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교사를 조롱하는 은어도 많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따돌림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학급을 어떻게든 이끌고자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13세의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 아이는 반장이었다. 날마다 한숨만 푹푹 쉬면서 부모님께 하소연했던 모양이다. 그런 하소연을 하는 학생이 1명은 아니었기에 그 반을 회복(?)시킬 수 있었는데, 여러 부모님들이 모여 학교 측에 항의도 한 모양이다. 학급 담임으로 결정된 날 반장의 어머니가 교실을 찾아왔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면서 조심스레 학급 분위기를 조목조목 설명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또 바뀌는 담임 탓에 걱정이 되어, 긴장을 바짝 하라는 뜻으로 학부모의 항의를 모아 대신 전하려던 듯 했다. 4-5분 간의 짧은 경청 끝에, 나는 별 말 없이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5분의 시간 만으로 나는 학급 상태를 파악하고 말았다.
내가 들어오자말자 수군거림과 떠듦, 흔히 현장에서 말하는 학생들의 '간보기'(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말이지만) 질문들이 여러차례 들어왔다. 종이 치기만을 기다리다가 9시가 되었고, 이내 칼(?)을 뽑았다. '종이 쳐서 선생님이 집중을 외쳤는데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는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존중을 모르냐, 너는 왜 처음 보는 사람을 창가 뒤에서 몰래 사진을 찍었느냐, 그 사진은 왜 내 허락없이 다른 아이들에게 전송을 했느냐... ' 아주 순화하여 이 정도 쯤의 언어로 표현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은 꽤 컸을 것 같다. 5분 안에 학급 공기는 달라졌고 학생들은 여태껏 보지 못했던 기운에 놀란 듯 했다. 목청은 큰데, 토씨 하나틀리지 않고 랩하듯이 쏟아내는 내 훈육(을 가장한 팩트폭력)에 어안이 벙벙했던 아이들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누가 밀고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 사진을 몰래 찍어 공유한 상황'까지 알고 혼을 냈으니, 이 아이들에게 저항 정신이 있었을리 만무하다.
이 상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초롱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학생은 반장 뿐이었다.
BONUS..
그 주에 있었던 4컷 만화 미술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