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가치] 3. 좋은 컨텐츠를 알려 드립니다.
수업도 검색할 수 있게 된 유튜브
디지털 리터러시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플랫폼이 바로 유튜브입니다. 문자보다 훨씬 구체적이며 빠른 자극 탓에 어린 학생들이 좋아하게 되었지요. 광고 수익과 결합되면서 유튜브 시장은 놀랍도록 성장하였고,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구체화할 기세로 많은 양의 컨텐츠들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르는 것이 생기면 이제는 일반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고 유튜브에서 검색하게 됩니다. 컨텐츠 플랫폼이지만 검색 플랫폼의 기능을 겸하게 된 것이지요.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학습컨텐츠는 학생들에게 '유튜브 검색으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학생들의 자율학습 역량이나 지적수준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관련 연구가 진행되어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연구가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만약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새로운 시대의 교육, 포스트 코로나에 처한 학교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업을 선택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학교의 가치는 어떻게 변할까요?
생각할 지점 - 학생과 수업
저는 유튜브를 통해 학습을 경험할 수 있고, 심지어 수업을 비교할 수 있게 된 현재의 경험이 교사와 학생에게 상이한 양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교사는 '수업이 비교될 수 있다'는 현실감에 위축되면서도, 한편으론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합니다. 이를테면 '좋은 컨텐츠'를 제작하고, 찾는 것이지요.
좋은 컨텐츠를 찾고, 제작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는 컨텐츠가 수업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으며, 컨텐츠를 보는 학생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개인적인 느낌이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풀어나가는 것은 상당한 한계이겠으나, 현재의 컨텐츠 생산과 공유 방식에 우리 스스로 경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짚은 것은 상당히 불편하면서도 필요한 일이 되겠지요. 평소 '교실 수업'에서 고민하던 학습자의 배움이나 효과성보다 '화려하고 집중도가 높은 영상미'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아닌지, 혹은 '교과서 속 내용을 모두 다루는 컨텐츠' 제작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컨텐츠를 직접 만드는 것은 훌륭함의 가치인가, 효율성의 가치인가
교사는 원격수업 기간 중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째는 좋은 컨텐츠를 찾아 자신의 학급 플랫폼에 링크를 걸기 위한 것이었고, 둘째는 자신이 직접 컨텐츠를 찾아 편집(재가공)하거나, 처음부터 영상 전체를 제작하는 형태였습니다. 교육부에서 조사한 결과와 함께 주변 경험을 토대로 짐작해보면 전자와 후자의 비율은 8:2 ~ 9:1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편집과 제작이 전과목을 담당해야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중등의 경우에도 과목이 하나라곤 하지만 3개 학년을 모두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선 쉬운 일이 결코 아니지요. 게다가 좋은 컨텐츠가 널려있으니 굳이 이걸 만들 필요 없이 있는 자료를 잘 활용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컨텐츠를 찾아 링크를 거는 교사와 컨텐츠를 만드는 교사 중 어떤 교사가 더 훌륭한 교사일까요? 사실 질문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것이지요. 직접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면 혹시 - 교사가 직접 만드는 컨텐츠의 교육적 효과보다 교사의 노동과 헌신에 대해서 더 많은 가치를 둔 것은 아닌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건 내가 직접 만들었어, 교사가 만든 것이 최고의 컨텐츠야'라는 생각이나, '그걸 언제 다 만들어, 시간 낭비에 헛수고지. 지금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만든 컨텐츠를 잘 활용하는게 현명해'라는 생각 모두 중요한 부분 - 학생의 입장이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검색하여 공유하거나, 제작하여 공유하고 있는) 수업 컨텐츠가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직접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아니- 효과적일까?
'다 만들어져 있는 컨텐츠를 내가 굳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내가 만든 컨텐츠가 다른 컨텐츠와 차별성을 둘 만큼 어느 한 부분이라도 독특한 점이 있기는 한 것일까?' 두 학년의 3개 단원에 해당하는 수업 컨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난 후에야 컨텐츠의 생산성과 효과성을 성찰하게 됐고, 고민이 지속되면서 컨텐츠를 만드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서 그쳤다면 제 몸은 편했을텐데, 아쉽게도(?) 컨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훌륭한 학습컨텐츠들은 나무랄데 없이 훌륭합니다.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차분히 다루고 있으면서 명확한 자막과 흔들림없는 화면, 주요 부분을 확대하며 설명까지 곁들이는 컨텐츠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성을 지닙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미 만들어진 컨텐츠를 내 교실, 우리 학생들에게 사용하기엔 뭔가 찝찝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수업의 방향과 철학- 여백을 남겨두고 소통으로 보완하는 - 수업 형태에도 컨텐츠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존의 영상을 편집하여 필요한 것만 제공하려던 계획에도 저작권 문제나 영상 자체의 완결성이 커서 재가공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가르치는 교사의 호흡이나 신체에 맞지 않은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수업 컨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교사가 컨텐츠 제작을 고집하였다면 이는 '내가 학습과 수업에 대해 이만큼 노력하고 있는 교사'라는 생각보다는 '시중의 컨텐츠보단 이 부분을 좀더 강조하여 가르치고 싶어'라는 교수자로서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제 과오를 인정합니다. 어설픈 영상편집과 부족한 촬영에도 불구하고 제가 수업컨텐츠에 직접 제작한 것은 '교사로서 해야 할 의무나 헌신'에 집착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수업 컨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투자한 시간과 노력으로 몸이 지쳤기 때문입다. 몸이 지치니 꾀를 내게 됐고 성찰하게 됐습니다. '내 노력이 과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가,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서 내 몸을 편하게 만들까?', '시간을 투자한만큼 학생들의 교육효과는 높아지고 잇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 컨텐츠의 내용을 조금은 비워내고, 모자란 부분을 학생의 몫으로, 또 교사와의 온라인 소통으로 남기고 싶었던 초기의 제작 목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여백이 있는 수업 컨텐츠
우리는 흔히 수업 관련 연수나 코칭, 컨설팅을 받으면서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지 마라'는 조언을 받습니다. 컨텐츠가 수업을 대체하는 용도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컨텐츠는 좀더 가벼워야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수업을 대체하는 컨텐츠이기에 많은 선생님들은 교과서 속 내용을 빠짐없이 담고 있습니다. 고된 편집 노동과 수업의 바람직한 방향을 되짚으면서, 좋은 컨텐츠가 될 수 있는 나름의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많은 것을 담기보다 핵심만 담는 가벼운 컨텐츠 - 자세한 설명은 없는 것이 낫다.
2) 가변성이 높은(편집이 용이한) 컨텐츠 - 차후에도 교사 본인이 새롭게 활용하거나, 다른 선생님이 쉽게 편집할 수 있도록
3) 컨텐츠를 활용하는 텍스트 (과제, 질문, 교사와의 소통 절차)까지 포함될 때 '좋은 컨텐츠'
그렇다면 학생은 어떤 컨텐츠를 좋은 컨텐츠로 받아들일까요?
'학생에게' 좋은 수업 컨텐츠
1) 텍스트를 덜어내고 영상 본연의 특징을 살리기
상당수 많은 컨텐츠에는 교과서에 담긴 개념이나 문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교과서 내용을 빠짐없이 다뤄주는 영상이 그나마 안심이 되는데, 직접 학생의 성취수준을 파악하기 힘든 온라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교실에서 수업할 때 교사가 남겨두는 여백마저 가득 채우는 영상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영상에 많은 내용이 들어오면 - 영상이라는 도구를 활용했지만 실은 '텍스트'형태의 컨텐츠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대학 교수님들이 자주 쓰는 ppt와, 스티브잡스가 활용했던 프레젠테이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영상이 영상으로써 빛나려면 - 텍스트가 가리키는 구체적인 대상을 크고,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텍스트는 자막의 위치로, 실물은 포커스되는 것입니다.
2) 때로는 복잡한 실물보다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낫다
사회 관련 컨텐츠를 학습할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실물 사진을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을까요? 과학컨텐츠를 만들 때 암술과 수술이 담긴 꽃의 구조와 기능을 설명하면서 꽃의 실물과 꽃가루받이의 실제 영상이 더 나을지, 아니면 단순화된 형태의 애니메이션이 나을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상을 받아들이는 학생은 '복잡한 텍스트'로 구현된 개념의 추상성을 보다 쉽게 이해하길 원함에도 영상은 전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3) 텍스트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 영상화
제가 '중력파'와 관련된 과학체험 학습지를 만들기 위해 '마이켈슨 간섭계'라는 지식을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준으로 글을 풀어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 어려운 학습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많은 텍스트를 섭렵해도 적절한 사진자료로 만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유튜브에 제작된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단숨에 개념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영상을 찾는 것도 '전혀 보지 못한', 또는 '매일 보고 있음에도 뭔지 모르는' 현실 세계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4) 분량
하나의 짧은 영상 만으로 교과서 속 물음을 읽고 답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난이도여야 합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이 낫지, 양이 많아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기회조차 포기하게 될테니까요.
여전히 남는 고민 - 소통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사의 입장에서 만드는 컨텐츠에 들이는 수고와 비례하여 효과성이 담보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오히려 수고를 줄일수록 더 좋은 컨텐츠로써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습니다. 여백을 남겨 두고 편집이 용이한 컨텐츠에, 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을 적절하고 단순한 애니메이션 류의 컨텐츠로 포함시킨다면 훨씬 좋은 컨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늘 학생의 배움과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 남겨두는 여백의 미, 짧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교수학습자료가 영상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영상 자체를 제작하는 것이 교사 혼자만의 영역으로 남겨져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교사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고, 과학관 내의 전시물에서 볼 수 있는 영상처럼 전문가에게 의뢰한 영상을 교사가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이 갖춰져야 합니다.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좋은 형태의 클라우드 기반 LMS가 보급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eBzTCbGnlWo - 사과꽃 열매가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 설명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VOyq2KQYLsA - 광합상 과정의 애니메이션, 다른 설명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컨텐츠는 불완전합니다. 학생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즉시성을 지닌 피드백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업의 효과는 여전히 떨어집니다. 만약 현재와 같은 블렌디드 수업 형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학교는 지금 당장 '컨텐츠'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봐야 합니다. 영상이 어땠는지, 이해하기 쉬웠는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웠는지 묻고 생각해야 합니다.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면 좋을지 교사와 많은 수업협의회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더 나은 컨텐츠를 찾을 수 있게 되고, 제작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컨텐츠가 '수업'을 대체하는 것이 어려우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것이 있네요.
부족한 컨텐츠 시청과 학습을 보완하고, 소통을 더 원활하게 만들고, 컨텐츠의 질을 높이는 협의회가 이뤄지는 곳..
바로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 여전히 학교의 가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