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가치] 2. 진짜, 수업이 될까요? (원격수업의 효과성)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내일이면 초중고 전교생이 모두 등교하는 날짜가 됩니다. 물론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은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등교를 중지하고 있는 학교가 많아지고 있지만, 수도권을 제외하고 밀집도가 낮은 도농지역이나, 남부지방은 살얼음을 걷는 기분 속에서도 순차적 등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각 단위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을 축소하고, 원격수업과 병행하는 블렌디드식 수업을 하거나, 격일, 격주 수업을 운영고 있습니다. 등교가 되어도 여전히 원격수업은 끝나지 않은 셈입니다. 더구나 수많은 감염병 전문가들은 다가오는 가을철 2차 대유행을 경고하고 있어, 한시적일 것만 같던 원격수업 형태는 학교현장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과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원격수업, 진짜 수업이 되었을까?
등교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학생과의 '학습성취'에 대한 소통입니다. 선생님이 올려준 컨텐츠가 어땠는지, 이해는 할 만 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구글클래스룸을 플랫폼으로 활용했던 저는 간간히 단원이 끝나거나 중간 즈음에 퀴즈 과제를 제시하여 학생들의 성취도를 확인하곤 했는데 성적이 그닥 좋진 않았습니다. 원래 이 학생들의 실력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격상황에서 다소 떨어진 긴장감 탓에 대충 응시한 것인지도 궁금하고, 시간이 지난 후의 학습 과정에 대한 장단점도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 내일이면 그 답을 어느정도 얻을 수 있겠지요.
교육청에서 내려온 원격수업의 형태는 크게 3가지, 컨텐츠 제시형, 과제 제시형, 실시간 쌍방형 수업형이었습니다. 저는 세가지 형태 중 어떤 것이 가장 좋은 효과성을 띠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근무하는 지역의 상황을 가만히 살펴보면 '특정 수업 형태'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은연 중에 하나의 수업 방식을 권장이란 이름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하나를 고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모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컨텐츠/과제제시/화상수업 비교
주 3회, 5-6학년의 과학수업을 맡으면서 '과학실험'을 어떤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될지 오래도록 고민했고, 결국 주2회는 컨텐츠+과제 제시 혼합형으로, 주1회는 구글 meet를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화상수업으로 운영하였습니다. 내 수업을 전담하여 촬영해줄 감독도 없는 형편이라 실험 과정을 실시간으로 수업했다간 상당히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수업은 어수선할 것이란 판단과, 실제 과학실에서 학생들은 실험 장면을 코앞에서 보고 있다는 현장감을 고려해 '확대된 컨텐츠'를 직접 제작하기로 한 것이지요.
1. (컨텐츠 제시형) 길면 안 된다.
처음에는 설명과 함께 디지털교과서, 실험영상, 소프트웨어 시연 등으로 컨텐츠를 촬영하다보니 20분 전후의 컨텐츠가 제작되었습니다. 5분 남짓한 e학습터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그쪽 플랫폼은 선정 대상에서 고려하지도 않았기에, 컨텐츠 양이 다소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판이었습니다. 제작 후 제가 직접 컨텐츠를 시청하게 되니 오래도록 보기 힘들었습니다. 유튜브 스튜디오에서 재생 시청 시간을 확인해봐도 실제 영상의 절반도 안 되는 평균재생시간이 기록되었습니다.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유튜브 속 컨텐츠를 볼 때에도 하나를 느긋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재생 속도를 빨리하거나 스크롤을 당겨서 본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과목까지 모두 들어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한 과목당 컨텐츠가 30분이라면 3-4과목을 하루에 들어야 하는데, 엄청난 시간인 셈이죠. 실제 학교 현장에서 40분 수업 동안 교사는 '구성주의'이론에 입각한 촉진자의 역할로 학생의 학습을 조력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10분의 설명과 안내만 있으며 나머지는 학생의 활동 과정을 살피고 피드백하는 순회지도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원격수업 형태에선 학생이 화면 속 교사의 설명을 10분보다 훨씬 더 많이 듣게 되는 것이죠. 수업이 될 리가 있을까요?
그리하여 컨텐츠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시간은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17분, 13분, 7분, 5분까지 내려가더니 이제는 4-5분을 기준으로 하고 짧은 실험은 3분 안에 제작하여 제공했습니다. 3분이라 할지라도 이해가 안 되어 다시 보게 되면 실제 시청 시간은 6분이 되는 것이니까요. 학생들에게는 '영상이 짧으니 절대 당겨보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볼 것'을 강조하였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반복'해서 보도록 지도했습니다. 영상 평균 재생시간은 컨텐츠 시간은 차시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초반에 비하면 꽤 높은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ㅇㄷ스쿨이나 다른 사이트에 조회하여 학생이 아닌 다른 교사들이 대충 조회한 것을 포함했다고 생각하면, 꽤 나은 시청률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청을 하고 안 하고의 의지는 학생과 학생을 둘러싼 가정 환경에 달려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컨텐츠 제시형은 학습자 개인의 진도율이 파악되는 기능이 보완되어야 합니다. 또한 컨텐츠만 켜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학생의 학습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컨텐츠 시청을 통해 해낼 수 있는 과제 제시가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2. (과제제시형) 과제 제출율은 어땠을까?
그래서 영상 중간에 퀴즈를 제시했습니다. 영상을 시청하지 않은 학생은 퀴즈에 대해 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핵심 질문을 제시하여 구글클래스룸의 비공개 댓글에 답을 적게 하면, 실험관찰 전체를 확인하지 않아도 학생의 학습 수준을 한 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학생 과제 제출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졌습니다. 담임선생님을 통한 과제 미체줄 여부 통지와 함께, 제가 학생 개개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과제를 제출하라고 독촉(?)하는 경우에는 20명을 기준으로 2-3명만 미제출이고, 나머지는 다 제출했습니다. 어느 날은 20명 전원이 제출할 때도 있었으나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2달에 걸친 학습 기간 동안 15개의 과제 중 2-3개만 제출한 학생도 많았습니다. 정말, 수업이 이뤄진 것이 맞을까요?
(곳곳이 빈 칸으로 되어 있거나, 누락되었다고 적힌 학생들. 제출하지 않았으나 점수가 제출된 학생은 긴급돌봄으로 온 학생을 개별지도하여 기록한 점수..)
3. 화상수업은 효과적일까?
1-2주 진단 끝에 설명과 소통이 필요한 차시를 수업하기 위해서, 또 과제제출을 독려하기 위해서 화상수업을 시도했습니다. 첫 시도때만 해도 학교에서 화상수업을 하라는 이야기가 없었으나, 등교가 이뤄지는 지금 이 시점에는 갑자기 실시간 쌍방수업을 꼭 하라는 식의 분위기가 일선 학교장 사이에서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화상수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꼭 읽어주셨으면 하는 글입니다.
화상수업을 위해 meet 회의방을 개설했으나 시간이 되어도 학생들이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학생들을 기다리느라 1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첫 화상수업에서는 지난 시간에 학생들이 풀었던 퀴즈과제의 풀이와, 다음 차시의 진도였는데 27분이 기록되었습니다. 거의 40분을 모두 채운 것입니다. 그렇게 40분을 채우고도 학생들은 40분 동안 실험관찰에 자기가 배운 내용을 글자 한자 적지 못했습니다. 다시 집에서 과제로 실험관찰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상수업을 10분으로 대폭 줄였습니다. 교과서에 제시된 내용의 배경지식과 함께 설명이 꼭 필요한 부분을 간단히 요약하고, 보여주고 싶은 영상 자료의 중요 부분을 짚어주며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렇게 10분을 수업하고 과제제시를 했더니 시간 내에 과제를 제출하는 학생이 절반까지 늘어 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화상수업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계속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 기기문제, 들어와서 휴대폰을 만지느라 생기는 잡음, 다른 친구와의 잡담, 채팅을 통한 수업 방해 등 다양한 현상을 겪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에는 마이크를 모두 끄게 했습니다. 지목하는 학생만 마이크를 켜서 발표를 하게 한 것이었지요. 자기 차례가 되어 마이크를 켜고 대답을 해야 하는 순간에 묵묵부답인 학생들, 화상수업임에도 자신의 얼굴을 계속 가리거나, 하품을 연발하는 몰지각한 학생들 덕분에 수업을 다잡아 나가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뒤에서 부모와 학생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장면까지 그대로 영상에 나와 한 두번 곤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부분을 교육하면 해결이 될까 했지만 학습자의 가정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교육'만으로 해결이 된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아래쪽에는 컴퓨터로 접속하여 웹캠이 없는 학생들, 또는 자기 얼굴을 일부러 감춘 학생들입니다. 나머지 학생들도 수차례의 독려(오늘은 얼굴을 공개하고 수업합시다~) 끝에 공개하였습니다. 학생의 표정을 한 번에 볼 수 없는 형태라면 굳이 화상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차라리 단체 보이스톡이나 단체톡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훨씬 실시간에 부합할 것입니다.
필요할 때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
그나마 가장 큰 소득이었던 것은, 5학년 과학에서 나오는 '단열이 잘 되는 집 만들기' 수업의 발표 수업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과제물을 학생들에게 선보이다보니 참여도도 높았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학생이 서로의 작품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습니다. 광합성 실험의 실패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화상 수업은 효과적이었는데, 글이나 과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제 설명으로 해결했다는 반응이 화상수업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다 해보니까...
결국 모든 것을 시도해봤지만 일장일단이 있는 원격수업이었습니다. 하나만 선택해서 될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혼재해야 했고, 어느 것 하나만을 고집하기보단 융통성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교사의 수업의지와 교과지식을 잘 녹여낼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다양한 방식을 섞어서 수업한다고 하더라도 - 수업은 정말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요? 수업 과정에서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이뤄지는 교감과 소통이 원격수업에서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화상수업을 강조하는 일부 관리자/교사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소통과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강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컨텐츠만 제시해서 지식 전달에 어려움이 있을까봐 강조하는 것인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저 수업은 안하고 유튜브 속 컨텐츠만 제시한 채 과제만 내어주었다는 이유로 민원이 늘어나는 것을 들며 화상수업을 해야 한다면, 누가 이를 납득하겠습니까? 컨텐츠 제시나, 과제제시나, 화상수업 모두 현재의 상황에선 교실에서 면대면으로 수업하는만큼 교육효과를 나타내긴 어렵다는 것을 다시 상기해야하며, 3가지 유형 중 어떠한 것도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교실에서 이뤄지는 교육
특별실 이동도 어렵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교구 사용도 제약받는 학교 수업을 생각하면 차라리 집에서 원격수업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개학을 추진하는 목적과 현상이 정책을 추진하는 관료의 목적과는 확연히 달라야 할 것입니다. 제한된 형태 속에서도 어떻게든 원격수업이 차마 담아내지 못했던 교육의 본질을 교실 속에서 이뤄내도록 노력해야 되겠지요. 그것만으로도 벅찬 고민인데, 학교 현장을 '최전선'이란 이름에 방역의 시금석으로 여기고 있는 현실이 슬픕니다.
현 상황에서의 등교수업은 원격수업 3가지 유형 외에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선택지를 실천할 시간입니다. 학교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원격수업으로 채워지지 못한 부분을 등교 과정에서 채워야 할 것입니다. 지금껏 생각한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는- 모둠형태를 최소화한 거꾸로교실 수업, 휴대폰을 활용한 강의식+응답식(mentimeter, 팅커벨) 수업입니다. 비접촉을 유지하면서 수업에 참여시키고, 컨텐츠를 계속 활용하되 컨텐츠를 보는 눈을 현장에서 가르치는 형태입니다. 빈틈이 많았던 원격수업에 교실과 교사가 들어온다면 좀 더 나은 교육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해보지 않은 일이라 아직은 상상에 불과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