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친일청산 프로젝트] 잊지 않기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지난번 '친일화가와 표준영정제도'를 주제로 친일청산 프로젝트 주제글은 마무리하려던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연재하고 난 후 갑작스레 경색된 한일관계와 더불어, 일본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천하는 시민 운동 성격의 움직임이 지금껏 지속되고 있습니다. 당혹스러워 하는 일본 업계와 굳건한 의지를 보이는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편승(?)하려는 탓으로 번외편을 준비했습니다.
그간 연재했던 4편의 주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나 '고쳤으면 하는 것'을 위주로 적었습니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로써 자격을 생각해보고, 우리고 왜곡하고 있는 역사는 없는지 다시 생각해보며, 바르게 고칠 수 있는 것은 바로 고치자는 취지였습니다. 실천의 영역에 가까운 이 주제를 '진짜' 마무리하기 위해, 이번에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를 직면할 수 있는 곳, 바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소개하려 합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새로 생긴 역사관입니다. 이곳의 바로 옆 건물과 앞쪽에는 유엔평화기념관과, 유엔기념관, 평화공원, 부산문화회관 등 한적한 자연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기념한 장소와 문화시설이 모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생이 된 제자와 호사카 유지 교수의 특강을 들으러 한 번, 중학생 제자들과 또 한 번을 다녀 왔고 - 개학 직전인 어제는 우리반 4학년 학생들과 함께 사제동행을 다녀 왔습니다. 1학기 때 수학 시간에 우박수 수업을 하면서, 재미로 '가장 긴 우박수'를 찾아 오는 학생을 뽑아 방학 때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공언한 탓입니다. (음식으로 유혹하고, 어려운 교육을 맛보게 하려고..)
사실 초등학생이 이 역사관을 둘러보기에는 내용히 상당이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부분들이 많았는데요, 이를테면 일본군인들이 사용했던 콘돔을 전시하거나, 일본군'위안소'형태와 탄광 작업 중 사고가 일어나는 상황을 표현한 모형전시물 등 어린 학생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전시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이거나, 말하기 어려운 부분은 에둘러 표현하면서 조선인들이 왜 강제로 끌려가 목숨을 잃거나 고초를 겪어야 했는지, 그 과정에 집중하여 설명했습니다.
역사관의 첫 관람을 시작하는 벽면입니다. 건물이 상당히 큰데, 위에서 보면 건물 전체가 '배'를 본떠 만든 모습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한반도의 많은 조선인들이 이곳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중국, 사할린, 동남아시아 각지로 끌려 갔습니다. 강제동원된 사람 중 22%가 경상도 사람이었다는 점 때문에 건물을 이 곳 부산에 지었다고 합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수가 780만 명에 이릅니다. 당시 조선인 인구가 2천6백만 명이라고 하니, 1/3이 강제동원된 셈입니다. 그 중 국내에서 남았거나, 해외로 끌려 간 이들, 노무동원과 군무원동원, 군인 동원 등 다양한 목적으로 끌려산 조선인의 수치가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4학년 1학기에 큰 수를 배웠으니 복습겸 읽어보라고 했는데.. 잘 읽네요...)
이 역사관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당시 강제동원된 분들이 직접 기능한 유물들이 상당히 많은 것,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증언한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들을 수 있다는 점 등 피해자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신선했던 것은 당시 탄광이나 일본군'위안소', 노무자 숙소 등을 실내에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피해 당시를 짐작케하는 연출된 영상들과 당시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탄광 작업 중 무너지는 돌에 깔려 있는 조선인의 실측 모형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무섭다'고 표현하더군요. 이 모든 것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한 일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위 사진은 당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노무 작업을 하던 곳 옆에 지어진 방공호 모형입니다. 앞에는 일본어로 글이 적혀있는데, 해석하면 '조선인은 방공호에 들어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방공호 건물 옆 벽면에는 '비행기 모형'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연합군과 전쟁 중이던 일제가 폭격 당시 일을 하던 조선인은 방공호에 들어올 수 없게 했음을 알려주는 전시물입니다.
이외에도 강제동원된 노무자의 숙소와 일본군'위안소' 를 나타낸 실측 모형이 있습니다만, 차마 사진을 찍기 힘들었습니다.
이 곳은 피해자와 유족들이 기증한 '피해 당시'의 사진들입니다. 끌려가기 직전 가족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사진 속 주인공 모두 조선인입니다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일제 군복을 입고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피해자의 이름은 모두 실명으로 기록되어 역사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3층 높이나 되는 벽면 한 가운데에 이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실지 한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차마 소개하지 못한 전시관이 많이 있지만, 이곳으로 많은 분들이 오시길 바라는 마음에 이 정도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지나갔던 과거를 굳이 들춰내면 미래를 지향할 수 없다는 일부 시민들과 정치인들의 주장이 들려 옵니다. 과연 이 사진 앞에서, 피해자의 생생한 육성 증언과 영상이 재생되는 이 곳에서도 과거를 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2019년을 살아가는 어른들은 우리의 부모, 조부모가 피해자의 연령대라 보다 절절한 아픔을 느끼겠지만,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이 사실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1. 수학여행을 추진하는 많은 6학년 선생님께서는 부산에 들리신다면 이곳,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꼭 들러주십시오.
2. 학교 여건이 안 된다면, 가정에서 휴가철에 한 번 들릴 수 있게 홍보라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3. 아직 어린 학생에게 일제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시는 선생님, 우리 사회와 어린 아이들의 마음 속에 역사를 멀게만 느껴지기 전에 한번 더 고민하시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십시오. 이곳 홈페이지에 다양한 유물 소개가 되어있으니 수업에 활용하시기 좋을 것입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홈페이지: http://museum.ilje.or.kr/kor/Main.do
*유물 사진 / 특강사진(호사카 유지 교수)
*'살기 좋은 북해도의 탄광으로'
*2018년, 당시 고2였던 제자와 함께 호교수님 특강 ^^ (정~말 유익했습니다.)
p.s.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만 역사고, 한국전쟁은 역사가 아니냐며 비판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일제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는 마음은 한국전쟁을 기억하자는 분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라를 위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께서, 젊은 세대가 겪지 못한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현 세대의 안보관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불안감일 것입니다.
이 곳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바로 옆 건물에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소개하는 유엔평화기념관이 있습니다.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지도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이곳에 들리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