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선생님이 최고다 6 - 왕따 당해 보셨나요?
최근에 우리반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이 생겼습니다.
이에 못 참은 아이는 117에 상담을 신청했고, 그 소식이 제게 들려왔습니다.
집에 가던 중 차를 돌려 아이를 만났고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선 담임선생님께 먼저 이야기 못하고 다른 루트로 고민을 털어 놓게 만들어 미안했습니다.
물론 따돌림이라는 것이 대부분 일방통행이 아니니 서로에게는 잘못이 있었습니다.
예상하는 그런 큰 사건은 아니었습니다만 아이의 마음속에는 상처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무작정 혼내려다... 그 마음을 공감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공감은 제 이야기로 시작 되죠
서울에서 초등학교생활을 하던 저는 4학년 말에 대구로 전학을 가게 되고
그 후로 1년 반동안(제 체감적으로.... 5학년까지니까...)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이유는 딱 한가지 '서울말'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전학간 첫날, 아버지 차 속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10월인데도 여름같은 불같은 날씨와....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사투리를 들으며
사실 여긴 나이었지만 그 곳을 내려보고 있었습니다. 큰 오산이었죠.
선생님께서 제 소개를 마치고 전 선생님께 궁금한 것이 있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선, 생, 님" 이 세글자가 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순식간에 교실은 웃음 바다가 되었고 그때 부터 저는 놀림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신기했거나 웃겻겟지요. 다들 선생님을 쌤이라고 했으니까요.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몰려와 제게 말을 겁니다
"선생님이라고 또해봐"
"니 꼬때까리가 뭔지 아나?" (너 코딱지가 뭔지 알어?)
"전구지가 뭐게?"
"말해봐"
"말해봐""말해봐"
"말해봐""말해봐""말해봐"....
그래서 저는 그 후로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제가 입을 다물어 놀림이 끝나자 외로움을 느꼈고
아이들은 그 것을 용케 알고 놀림이 괴로힘이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IMF가 닥치며 집에도 큰 어려움이 생겼지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녀사냥을 하는 학급어린이회의와 그를 방관하는 선생님
-승진에 목메달아 제 어려움이 보이시지 않았던 선생님
-친구인척 다가와 저를 놀리고 괴롭혔던 녀석들
-힘자랑을 하며 서로 자기네 편으로 오라고 하다 머뭇거리는 제게 욕설을 퍼붓던 녀석들
그 아이들은 분명 장난이었겠죠 그리고 저를 기억못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무뎌지고 무뎌질 때쯤
'존버'의 결과일까요? 제게도 적응이란 것이 찾아오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펼쳐주며
제가 느꼈던 감정을 아이들과 공유를 해봅니다.
뉴스에서 처럼
잔인한 학대, 신체적 고통, 패드립이나 심한 모욕감등의 이슈는 없었지만...
그래서 아이들이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운을 띄웁니다.
그래서 내가 그때 그들의 장난으로 느낀 감정은
첫째, 두려움.
두렵더라.
선생님도 두렵고 친구들도 두렵고 가족들도 두렵더라
선생님은 내 말을 안들어 주실 것 같았고, 친구들의 웃음 속삭임 작은 움직임도 공포가 되더라.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받을 상처와 뒷일이 너무 두렵더라
그래서 더 움추리게 되더라.
같은 나이 같은 덩치 같은 학년에 친구에게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 웃길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거는 나는 소수고 그들은 다수였기에 나는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내게 다가와주는 친구마져 믿지 못하게 되더라
둘째, 외로움.
외롭더라
학교에오면 사람도 많고 일도 많은 데 외롭더라
아이러니하게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는 것이 외롭더라
차라리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모르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속에서 홀로 남겨짐이 느껴져
더 외롭더라, 외롭단 생각을 하니 더 외롭고 더 외로우니 외롭단 생각밖에 안들더라
군중들 사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더라. 괴로움이더라
셋째, 비참함
비참하다는 뜻이 뭔지 아니?
비참하는 거는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은 데 그 죽을 용기조차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떄
그때 그 처절함이 비참함이더라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더라.
소리를 지를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반항을 할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더라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 나는 비참함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이 지나고 잊혀질만도 하겠지만
가끔이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떠올라
나에게 분노, 후회, 원한, 복수심, 저주의 나쁜 감정을 싹틔운다.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자라나는 이런 감정은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여러분도
누군가가 나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거나
나에게 이런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혹시나 이런 마음이 느껴지는 학생이 있다면
때로는 흔들려도 때로는 실수를 해도 때로는 넘어져도
포기 하기 말고 '존버' 해보자.
가슴펴고 당당하게 끝까지 버티면 된다.
반듯이 된다. 꼭 된다. 이겨내진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지켜봐줄 테니까 함께 버텨보자
라며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
아이들에게 겪지 않은 일을 공감하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겪을 일을 완벽히 공감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미세먼지 같은 자잘한 일들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심각한 일로 기억될 것임을 깨닫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흔들고
교육과 교화의 경계를 학대라는 잣대로 무너뜨리는 시선에도 우리가 '존버'해야 하는 이유는
그나마 세상에서 아이들의 미세먼지 같은 일에 관심가져주는 존재가 우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학대니 인권이니 하는 잣대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사회적 편견과 따가운 시선에 외로움을 느끼면서
딱히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비참함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존버( :열심히 버티다) 가 아니라
존버 (: 존재의 이유는 버리지 말자.)의 마음으로
아이들 속에서 살아남아야겠습니다.
아이들은 세상의 희망이고
우리는 언제나 최고입니다.
-------------------------------------------
뒷이야기
117에 신고한 아이는
제가 집에가다 (대전에서 세종 ㅠ) 돌아온 것에 너무 감사해하며
혼자둬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늘 지켜보겠다. 라는 말에 힘을 얻고
열심히 존버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교실에서 반 친구에게 처음으로
"아이씨 좀 하지마!! "라면서 큰소리 역정을 부렸지만
그날은 선생님의 마음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으로
대견하게 생각하며 넘어가 주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