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극한직업
아오. 엄마 나 오늘 똥 만졌어.
내 똥 말고 내 새끼 똥 말고 남의 똥 만졌어.
그 것도 맨손으로 말이야.
하. 이거 정말 극한직업이다.
갑자기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존경스럽기 시작했어.
뭐 괜찮아 나쁜 일은 아니었어 걱정하지 마.
그냥 오늘은 소풍을 가는 날이었어.
고학년들은 멀리 가지만 저학년들은 차를 오래 타지 못해서 가까이 가곤 해.
사실 큰 꼬맹이나 작은 꼬맹이나 요즘 다 자가용으로 여행을 가서 그런지 버스를 잘 못 타는 건 사실이야.
오늘은 학교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체험마을로 갔어.
이럴 땐 보통 멀미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해.
미리 약을 먹여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선생님 책임일 경우가 많아.
그래서 나는 차에서 음식을 못 먹게 하는 편이야.
아이들 간식 냄새가 합쳐지면 아이들이 멀미하는 경우가 많거든.
딱히 간식을 먹을거리도 아니고. 그래서 미리 이야기했어.
간식은 차에서 못 먹는다고. 그럼 아이들이 물어봐.
껌은요. 사탕은요. 주스는요. 물밖에 안돼라고 말해줬어. 사실 물도 안 먹이고 싶었어.
얼마 전에 다른 학교에서 소풍가는 버스에서 물을 먹다가 버스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바람에 페트병 주둥이에 이빨이 깨지는 일이 있었어.
그리고 그 학부모는 책임을 담임교사의 관리 소홀로 배상을 요구했어.
웃기지?
근데 우린 웃을 수가 없어.
그래서 나도 몸을 사리느라 물도 안된다고 한 적이 있어.
그날 바로 민원 전화가 오더라. 우리 애 목말라죽으면 어떡하냐고.
아니 무슨 탄광 가는 것도 아니고 10시간 여행버스도 아닌데.
그리고 설마 그런 상황에서도 물 한 모금 안 줄까 싶었나 봐.
소풍 처음 가는 학년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 물만 가져오되 조심히 먹자고 했어.
그러자 보리차는요. 옥수수차는요. 이온음료는요 라면서 또 질문이 쏟아져.
결국 냄새가 심하지 않은 액체류라고 결론지어줬어.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작년에 아이가 버스에서 간식을 먹다가 바닥에 토를 했어.
그럴 수 있지.
흔들리는 차 안에서 운전기사님 눈치를 봐가며
다른 아이들이 놀리지 않게 주의시키면서
그 아이가 상처 받지 않도록
울컥거리는 속을 잘 달래며 마무리를 했어.
어른이고 선생님이라도 토 냄새는 쉽지 않더라.
버스는 잘 닦았음에도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아.
창문이 없기 때문이야. 있어도 안전상의 이유로 못 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예정에 없던 휴게소에 들렀어.
한 번 더 청소를 하고 잠시나마 환기를 시켰지.
그리고 출발하려는데 입에 잔뜩 간식을 머금고 오는 그 아이를 발견했어.
자기는 속이 비면 멀미를 한다고 비워낸 속을 다시 채웠데.
틀린 말은 아니었어.
그리고 출발한 버스에서 휴게소에서 먹은 것들을 다 보여줬고 결국 멀미는 연쇄작용을 일으켰어.
아비규환이었지.
멀미를 한 아이를 탓하는 건 아니야.
이들에게도 과자를 못 먹는 고통과 멀미를 하는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힘들지 이야기해줬을 뿐이야.
말이 너무 길었네.
아무튼 잘 갔어.
내가 말하지 못한 리스트의 간식을 몰래 꺼내 먹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멀미를 하진 않았어.
그때였어.
한 번씩 아이들 상태를 점검하는 데 한 아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어.
급똥이었어.
기사님께 조용히 말씀드렸지만 불가능이었어.
짧은 구간 이용하는 고속도로에 휴게소는 없었고 위험해서 갓길에 새울 수도 없었어.
가장 가까운 건 톨게이트 화장실인데 이 또한 쉽지 않았어.
예상시간 15분. 고통의 레이스가 시작되었지.
하아. 분명히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 가라고 했는데.
그래 이해해.
다른 아이들이 있어서 큰일을 못 치렀을 수도 있어.
그리고 그게 계획적으로 안 되는 일이잖아.
그렇게 아이를 이해하고 제발 길만 안 막히기를 기도하며 갔어
예상대로 일이 터졌어.
아이의 얼굴은 평온과 불안이 공존했어.
더러워진 속옷보다 똥싸개로 낙인 될까 두려운 건 아이도 나도 마찬가지였어.
앞의 두 아이가 눈치챘어.
냄새가 안 날 리가 없지.
그래도 너무 다행인 건 속이 깊은 아이들이라 비밀을 지켜주거라.
내가 다 고마웠어.
이제는 톨게이트 화장실도 의미가 없었어.
학교에 와서 나머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조용히 남자 샤워실로 데리고 갔어.
같은 남자라서 다행이지.
여학생이었더라면 씻겨주지도 못하고 누구한테 부탁하지도 못하고 나도 그냥 울었을지도 몰라.
부모님께 연락드려서 옷을 부탁했고 그사이 당황해서 울고 있는 아이를 씻겨줬어.
그런 거 보니 나도 이제 선생님인가 싶더라.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웃으며 잘 씻기고 내 수건으로 닦아줬어.
부모님이 오시고 옷을 받았어.
아이가 엄마를 찾아서 문밖에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께 아이를 먼저 내보내고 손만 씻고 나갔어.
없더라.
벌써 가셨더라.
뭐 하긴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어.
그리고 놀랐을 아이를 먼저 챙기는 게 맞지.
그렇게 나는 다시 샤워실로 돌아와 개수대에 걸려 미쳐 떠내려가지 못한 것들을 마저 치웠어.
하 오늘은 정말 난이도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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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엄마가 생각이 난다.
오늘만큼은 우리 반 아이들처럼
엄마한테 실컷 고자질하고 싶다.
어두운 밤 침대에 누워 졸려 무거운 눈꺼풀을 참고
하얀 창에 검정 글씨로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오늘을
두 엄지로 두드려 내려가 본다.
선생님이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고
결혼하고 아빠가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다.
나도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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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런 것 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 싶은
신비한 직업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