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입덕
엄마 내가 문제 하나 내볼게.
“진슈 쟤 삐졍 알지?” 이게 뭐게?
뭔 소리인가 싶지.
이건 엄마도 알아야 해.
다시 말해볼게.
“진슈 쟤 삐정 알지?”
이게 뭐게.
요즘 여자 아이들이 아이돌에 푹 빠져있어.
뭐 이게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닌 듯 해.
내가 어렸을 때도 H.O.T니 핑클이니 하면서 연예인 사랑이 엄청났었으니까.
나는 딱히 그런 팬심은 없었는 데.
그냥 이쁜 연예인을 보면 좋아하긴 했는 데 누굴 특별히 더 애정 한다거나 그러진 않았어.
뭐 대부분 남자아이들이 그렇지.
차라리 운동선수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손흥민이나 메시에 끔뻑 넘어가면서도 트와이스 멤버 이름에는 관심이 없는 게 남자 녀석들이야.
나도 그중 하나고.
그래도 종종 아이돌 공부를 해야 해.
그래야 아이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거든.
공감대가 있어야 하니까 아이들이랑 대화가 통하지.
남자아이들이야 스포츠나 게임이니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거라 한참을 떠들 수 있어.
같이 축구도 하고 때로는 게임도 같이 해.
문제는 여자아이들이지.
나도 늙었는지 티브이를 봐도 아이돌의 얼굴이 눈에 잘 안 들어와.
다 똑같이 이뻐 보이고 잘 생겨 보이고 그래.
조금 보고 있노라면 화면은 왜 그리 빨리 돌리는지.
멤버 수는 왜 이리 많은 건지 모르겠어.
조금 익숙하다 싶으면 새로운 아이돌이 나오고 쫓아가기 참 힘들어.
이름은 왜 또 영어인지 괜히 누구 하나 아는 척했다가 틀리면 우리 오빠 무시한다며 후폭풍이 장난이 아니야.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 지 데뷔일부터 생일, 본명, 별명, 고향, 수록곡 등 달달 외어.
정말 공부를 저렇게 했으면이란 생각하는 거 보니 나도 늙었네.
뭐 나도 지지 않아
“근데 너희 아빠 생신은 아니?”라면서
찬물을 붓지.
한 날은 뉴스를 보는 데 한국 아이돌 그룹이 영어로 연설을 했다네.
난 어디 시상식에서 상 받은 줄 알았는데.
유엔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연설을 했데.
Love yourself.
난 못생겼어요. 난 잘하는 게 없어요. 난 못해요를 입에 달고 사는
자긍심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에게 너무 필요한 말을 인기 많은 아이돌이 이야기를 다 해주네.
그것도 중요한 자리에서.
심지어 영어로.
그걸 들은 내 마음은 '고맙다'였어.
아이돌이라는 자리가 참 그래.
아이들을 정말 쥐락펴락할 수 있는 큰 영향력을 가진 자리야.
그런 분들이 나쁜 약에 손을 대거나 법을 어기는 일을 했을 때 혹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을 때
그 영향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오지. 그
들도 사람이겠지만 말이야.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아이돌급의 인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졌지.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어.
아무튼 루저. 씨 발라먹어. 쓰레기 뭐 이런 단어나 성적 의미가 담긴 이중적인 단어들을 아무 생각 없이 흥얼거리고 있을 때가 있어.
그럴수록 저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저급한 노래 가사로 아이들의 입을 홀리기보다는 좋은 영향력을 나눠줌에 감사했어.
대중성은 모르겠고 그냥 나는 선생님이니까 그런 것만 보이나 봐.
꼰대 지모.
아무튼 그래서 나도 입덕 했어.
입덕은 덕질에 입문했다는 거야.
덕질은 덕후질의 줄임말이고.
덕후는 오덕후의 뒷말이고 오덕후는 오타쿠의...
아니야 엄마 내가 미안해.
입덕 설명 취소.
나는 그들의 팬이 되기로 했어.
과외선생님은 우리 반 여자아이들.
과외비는 무료야.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가르친다라데서 어떤 쾌감을 느끼나 봐.
나를 앉혀 놓고는 종종 내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면서 오빠들의 역사와 전통부터 알려주기 시작해.
그렇게 나는 불타오르기 시작해서 피땀 눈물을 다 쏟고 나서야 고민 말고 고를 외치게 되었지.
무슨 말이냐고.
마미도 아미가 되면 아마 알게 될 거야.
아참. “진슈 쟤 삐정 알지?”의 의미는 멤버 이름을 도통 못외우는 나를 위해
과외선생님께서 만들어준 “진, 슈가, 제이홉, 뷔, 정국, 알엠, 지민” 멤버 이름의 약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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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엄마가 생각이 난다.
오늘만큼은 우리 반 아이들처럼
엄마한테 실컷 고자질하고 싶다.
어두운 밤 침대에 누워 졸려 무거운 눈꺼풀을 참고
하얀 창에 검정 글씨로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오늘을
두 엄지로 두드려 내려가 본다.
선생님이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고
결혼하고 아빠가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다.
나도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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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인데...
요즘에는 차라리 이 시절이 그립네요.
어서 빨리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라도
얼굴보며 눈 마주하며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오늘도 모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