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ep13 숨바꼭질
A
'교권이 무너진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 데 일반적인 초등학교에서 조금씩 느껴진다.
일부 어려운 지역의 학교에서는 몇몇 학생들의 교사가 받아들이기 너무 힘든 일들도 있다.
힘들어도 선생님들이 안아줘야 할 일이기도 하다. 난 태생부터 나쁜 아이는 없다고 믿는다.
물론 선생님들을 보는 시선이 예전과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제 들리지도 않는다.
일부 교사들의 나쁜 행동과 현대 교육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이 교육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자들은 이런 목소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나를 조금 더 공경해줬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라 그런지 선생님을 떠나 어른을 공경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친구 같고 편할 때가 있다.
아빠 같아서 그런가? 이게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아님 내가 너무 꼰대가 되었는가 고민해본다.
아이들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향한다.
교실 앞 가까운 화장실도 있지만 굳이 먼 교직원 화장실로 간다.
선생님과 화장실을 공유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숨통을 너무 조이는 듯도 하다.
나도 옆에서 볼일을 봐야 하는 불편함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너무 권위적인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어랍쇼?’ 교직원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학생 하나가 그 곳에서 성급하게 뛰쳐 나온다.
초등학교 때부터 생긴 나쁜 배변 습관은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아직까지도 등교 전에는 화장실로 꼭 향해야 한다.
있는 힘을 다 짜서 용변을 보려 한다. 바쁜시간 답답한 화장실에서 땀이 범벅이 되고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선생님에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자랐지만 그만큼 아이들은 더 짓궂어졌다.
통학거리도 훨씬 더 멀어졌음에도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늦어서 미친 듯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던 날들이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불편한 일들은 벌어졌다.
전날 먹은 것이 탈이 나거나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이 들었을 때, 특히 학교에서 긴장을 크게 하는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배가 아파왔다.
시험 치기 전 아침은 정말이지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모두가 시험을 보는 중이라 화장실이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커닝의 의심을 피할 수 없었고 어렵게 간다고 하더라도 시험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도 갑자기 배가 아팠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건 매우 어렵다.
선생님의 말씀은 끝이 없다.
그 와중에 적당한 순간을 찾아 흐름을 끊어야 할 땐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설사 타이밍을 잡았다 하더라도 불편한 의심을 받아야 했다.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쉬는시간까지 참아본다. 정말 사지는 굳어갔고 앞은 노래졌다.
덥지도 않는 날에도 식은땀은 온몸을 적셨다.
공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머릿속에는 ‘이번엔 어느 화장실로 가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또론또롱또로로로~"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난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을 나갔다.
제일 가까운 화장실로 향했다.
이미 다른 반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장난꾸러기들의 영역이 화장실을 피해 갈리 없었다.
변소 안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 밖에서는 깔깔 거리며 문을 발로 찼다.
옆 변기에 올라서고는 칸막이 위로 내려보며 시 웃고 있었다.
우스갯소리처럼 그들끼리 내뱉는 욕설은 나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아무리 급해도 여기는 도저히 아니었다.
그 순간 고통이 다시 한번 밀려왔고 난 잠시 움직임을 멈춘 후에야 평정심을 찾았다.
술래가 없는 곳으로 향했어야 했다. 위층으로 향했다. 그곳은 초록 딱지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초록 딱지는 3학년 선배들을 의미했다.
우리 학교는 명찰의 색으로 학년을 표시했는데 우리는 노란 딱지였고 윗선배는 초록 딱지 아래 후배는 파란 딱지였다.
초등학교에서는 ‘어’라고 대답하던 한 살 위 형들이 중학교에 와서는 왜 ‘네’가 되어버리는지, 알지 못하는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곳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노란딱지가 발을 들일 영역은 아니었다.
이번엔 아래층으로 향했다. 아래층에는 파란 딱지들이 가득했다.
내 교복의 노란 딱지를 보고 나를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선배니까 앞에서는 놀리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던 상관하지 않았다.
나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쉬는 시간 빨리 해결하고 교실로 향했어야 했다.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1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을 만났다.
“뭐야 너! 빨리 올라가!” 우리 학교는 선후배 간의 불필요한 접촉을 막기 위해 타학년 화장실 사용을 엄격히 금했다.
비참했다. 화장실 한번 가는 것이 내 삶에서는 가장 큰 역경이 되었다.
그냥 아무 때나 가면 돼지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봤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위생이나 시설이 문제였다면 오히려 해결하기 쉬웠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술래와의 심리적 문제였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고 심적 고통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지는 못했지만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고,
내 몸 역시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놀리는 것은 아이들이라면 그들이 없는 화장실을 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 학교에 딱 한 곳이 있었다.
선생님들의 화장실이었다.
학생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용변을 가지고 놀릴 일이 없는 성숙한 어른들만이 있는 곳이 있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선생님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해결을 했다.
내게 강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그 순간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교실로 향하려던 찰나 화장실 문이 덜컥 열렸다.
체육 선생님이셨다. 왜 하필 우리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분을 만나게 된 건지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라면서 물어보시고는 대답할 새도 없이 혼을 내셨다.
내 얼굴만한 큰 손으로 꿀밤을 몇 대 맞았는데 머리가 주저앉는 줄 알았다.
그래도 속으로는 차라리 선생님한테 들켜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되뇌었다.
친구들한테 걸려서 놀림을 당하느니 선생님한테 맞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굶고 짧게 혼이 나고 교실에 돌아가니 선생님께 수업 시간에 늦었다고 또 야단맞았다.
“어디 다녀왔냐"라고 화를 내면서 묻으시는 선생님의 말에 진실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복도에서 장난치다가 체육 선생님한테 꾸중 듣고 왔다는 말로 잘 무마가 되었다.
뭐 출석부에 몇 번이나 지각이라고 표시가 남긴 했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었다.
그 때마다 나는 선생님 화장실을 애용했지만 응당 그 대가를 치렀어야 했다.
우리 교실에서는 "똥싼다"라는 단어가 자주들린다.
나는 일부로 손 씻으러 화장실 갈 때도, 아이들이 화장실 갈 때도, 쉬는 시간이 될 때도 "똥싸고 올게~"라고 이야기를 한다.
양치기 소년이 그랬듯이 처음에는 웃기게 들렸던 이 말이 언젠가부터는 아무 감흥이 없어진다.
그렇게 익숙해지면 정말 '똥싸러'가야하는 아이가 덜 무안해 할 것 같다.
'선생님 저 똥 마려워요....' 카톡이 왔다.
수학여행을 갈 때면 항상 이야기를 한다. 우리 반 한 명이라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까봐 미리 선언을 하는 것이다.
"얘들아 혹시 똥마려우면 나한테 문자 보내, 내가 똥마렵다고 기사님한테 이야기 하면 되니까 대신 너무 참지 말고 미리 말해!"
누가 보면 엄청 자상하고 좋은 선생님의 모습이라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나를 위한 보험이다.
내가 배가 아플 때 익명의 학생의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용 화장실에 앉으면 신경이 곤두 선다.
조용히 앉아 볼 일을 보다가도 밖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오면 긴장을 한다.
전혀 그럴 이유가 없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몰려온다.
어릴 적에 겪은 트라우마는 내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젠 선생님의 입장이 된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과의 불편함을 핑계로 대지만 가끔 아이들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면 옛 시절로 돌아가버린다.
내가 봐도 '초등학생에게 놀림을 받을까 화장실 가기를 두려워하는 선생님'은 웃긴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반은 수업시간에 화장실은 프리패스다.
너도 나도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