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ep9. 나는 피해자였다.
학교폭력을 마주하기는 참 어렵다.
사실 학교폭력은 학교가 생기고 나서부터 줄곧 존재했다.
다만 십여 년 전 어느 지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이후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학교생활 옆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오른 학교폭력은 학업성적과 더불어 아이 걱정의 양대 산맥이 되었다.
당연하고 응당한 흐름이었다.
학교폭력이라는 학교에서 이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학교폭력은 가끔씩 너무 사소해서 어이가 없기도 하고, 때론 상상 이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알게 된 사건을 함부로 판단해서 너 다룰 수 없다.
그래서 참 어렵게 느껴진다.
때론 학생 사이에 모든 불미스러운 일에 학교나 어른들이 깊게 관여하게 되면서
아이들은 자정능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듯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나쁜 학생은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어른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언행들이 착한 학생들을 물들이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기에 시간과 믿을 주면 아이들은 충분히 감정의 자정작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유를 갖고 본인들끼리의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최고의 해결 방법이라 생각했다.
어른들이 아이들 사이에 낀다는 것은 문제를 오염시킬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갈등을 겪고 해결하는 과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장차 어른이 되어 겪을 시련의
예행연습이 될 줄 알았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조금 기다려주면 서로의 감정을 추스르곤 했다.
다시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하고 다른 관계를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부모나 교사는 그저 어긋나거나 지치진 않을까 믿고 기다려줄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일은 나의 신념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렸다.
사랑과 관심이 최선의 방법이긴 하지만 때로는 완벽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학교생활에 조금 익숙해져 갔다.
나에게도 무리가 생겼다.
늘 혼자 다녔던 나는 우연히 집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는 덩치가 중학생 답지 않은 커 꽤나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 눈에는 다소 거칠어 보이긴 했지만 다시 보니 짓궂은 장난꾸러기들로만 보였다.
모두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무리에 속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 했던 나는 종종 그들에게 공부를 알려줬고 그 들은 내게 소속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꽤나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 무리에 속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나는 연약했지만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만은 가슴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내 느낌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후로 아무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냥 관심 밖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이내 괜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말도 거칠어졌다.
나는 애써 그들의 생활습관과 행동들을 따라 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이들이었지만 내게는 우상이었다.
그들이 다닌다는 합기도학원에 함께 다녔다.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
몸을 쓰는 일이 어색했지만 강해지고 싶었다.
힘은 세지 않지만 난 그들보다 했고 똑똑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 날은 관장님께서 우리끼리 대련을 제안하셨다.
정식 경기는 아니고 그날은 쉬어가는 장난의 의미였던 것 같다.
우연히도 나는 그 가장 힘이 센 친구와 하게 되었다.
보호구를 모두 착용했지만 결정적으로 난 쫄보였다.
작년 하이에나들에게 맞던 기억이 날 더 아프겠다.
대련이라는 핑계하에 친구에게 신나게 두드려 맞고 난 합기도 도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들과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천성이 약해빠졌는 지 이상하게 그들처럼 일탈을 즐길 만한 용기도 없었다.
이후 나는 무리에서 적응을 못하고 겉 돌았다.
그들도 그런 나를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결국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멀어져 갔다.
다시 또 외톨이가 되는 것 같았지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나름의 용기가 생겼나보다.
아니 용기이기보다는 깡이 생긴 것 같다.
그들도 나를 좋게 생각했는지 종종 놀이터나 목욕탕에서 만나면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거면 나는 충분했다.
불안하게 잔잔한 나날이 흐르다 결국 큰 일이 터졌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우리 교실에는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이건 우리반 만의 일은 아니었다.
다른 반도 심상치 않았다.
교무실 안은 소란스러웠다.
괜히 엮기도 싶지 않아서 멀리 피해 갔다.
"몰라? 애들 x땠어. 다 퇴학당할거래"
궁금해 하는 내게 짝꿍이 이야기 해줬다.
교내에 큰 폭행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때는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도 생소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보며 짝꿍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줬다.
우리 학년에 몸이 좋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중학생 치고는 키는 아주 작았고 몸은 미련하게 보일 정도로 통통했다.
아주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고 머리는 곱슬거렸다.
한번씩 마주치면 시선은 항상 불안했고 말은 어눌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였다.
사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그 아이와 장난치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얼굴도 있었다.
그 아이는 그때마다 깔깔깔 웃고 있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은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아니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다.
간지러워서 웃는 것과 좋아서 웃는 것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놈들이 그 장애를 가진 아이를 심하게 괴롭혔다.
몇몇 다른 반 학생임에도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서 때리거나 간지럽혔다고 한다.
무엇보다 최악인 것은 옷을 벗겨 성기를 만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뉴스에 나오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 당시는 그냥 그런 사건이 되었다.
관련된 학생들이 모두 처벌을 받았다.
가장 심했던 놈들은 다른 학교로 강제 전학을 갔다.
나머지 놈들은 며칠동안 학교를 나오지 못하고 밖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 속에는 한때 나와 어울렸었던 그의 친구들도 있었다.
얼굴을 보지 못해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수업에 안들어와 즐거운 지 알 수가 없었다.
관련된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줄줄이 학교로 소환되었고
한동안 심란한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몇 주간 학교들 청소하던 놈들이 교실로 돌아왔다.
그랬음에도 장애학생은 결국 전학을 갔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였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여 내가 다칠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때가 생각나면 의미없는 후회와 반성을 하곤 한다.
“왜 그때 말리지 못했을까?"
"왜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못했을까?”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만약에 그 당시 그에게 도움주려고 노력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비겁하게도 이제 와서야 그런 생각을 해본다.
힘들어도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얼마나 괴로웠을지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당시는 나는 내 평화와 안정이 먼저였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내게 없었다.
그 당시도 지금도 생각으로 그 날 그 일의 당위성을 말도 안되는 말로 위안한다.
"나도 피해자였다."
"나도 피해자였어."
"나도 피해자였을 거야."
그렇게 멀리서 남아 내게 지원군이 되어 주었던 녀석들이 떠났다.
그 사건에 대한 반성을 하기보다는 나는 또다시 나를 지킬 궁리를 했어야했다.
공부를 해보기로 하였다.
사실 그 당시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나마 곁을 맴돌던 친구들도 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 다시 외로워진 시간을 공부로 채웠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봤다.
우리반 공부 꼴지와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사실 내가 더 잘못했는데 그 친구만 혼났다.
반장선거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게 내 공부의 이유가 되었다.
공부를 어느정도 잘하게 되니 정말 괴롭힘이 줄었다.
성적이 오르니 선생님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는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내가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는지 나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걸던 놈들도 없어졌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난듯 했다.
그 순간 이 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판단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비겁한 이유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성적이 오를수록 주변에서 나를 보는 느낌이 달랐다.
세월이 훌쩍 지나도 종종 그 아이의 눈빛이 떠오른다.
난 쉬는 시간 빈 화장실을 찾아 숨바꼭질을 했다.
우연히 그 교실 옆을 지나고 있었고 문은 열려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교실 안을 바라보았을 때 그 아이는 책상위에 누워있었다.
주변에 힘이 쎈 아이들이 그 아이를 붙들고 있었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그
리고 그 웃음 소리 사이고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두꺼운 안경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아이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눈물이 잔뜩고여있었다.
초점없는 눈빛같았지만 분명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눈빛은 주변을 둘러싼 덩치 큰 녀석들의 몸부림 사이를 지났고,
교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존재감을 깨닫게 되는 자욱한 먼지들을 뚫었다.
그리고 교실이 무너질 듯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의 파동을 피해 힘들게 나에게로 왔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제발 도와줘 제발"
모든 학교현장에는 하나 이상의 특수교실이 있다.
학기초에 되면 나는 늘 그 교실로 향한다.
그 안에서 모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언제든 그들과 만나면 친한 척 인사를 나눈다.
오히려 누구라도 보라는 듯이 친근감을 과시한다.
장애아동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그 주변의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힘이 쎄고 최고로 무서운 호랑이 남자선생님이 보내는 무언의 메세지다.
"이 아이들 건들지마."
하지만 그런 다고 해서 그 날의 일이
어린 나의 죄가 잊혀지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