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ep7. 나는 방관자였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나보다 딱 두 배 정도 더 큰 거인이 있다.
그 거인은 나보다 힘이 엄청 세다.
내가 팔씨름을 해도 주먹다짐을 해도 결코 이길 수 없다.
목소리도 크고 우렁차다.
그 거인이 고함을 지르면 생각과 다르게 몸이 꿈쩍할 수가 없다.
심지어 나보다 더 똑똑하기도 하다.
그래서 말싸움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가끔씩 사용하지는 않지만 손에 무기가 들려있을 때도 있다.
나는 그 거인을 매일 만나야 한다.
같은 공간에서 먹고 숨 쉬며 반나절을 버텨야 한다.
이쯤 되면 매일매일이 생존게임이다.
절대 거인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거인의 눈 밖에서 나서도 안된다.
그렇다.
사실 교실 속에서 그 상상의 거인은 바로 나다.
아이들에게 나는 무서운 존재이다.
평소에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아직 초등학생인 그들 마음속에 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선생님과 학생이 아닌 야생에서 만난 다른 생명체로써 본능적으로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여기는 교실 안이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안심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최대한 아이들에게 거인이 되려 하지 않는다.
나의 그런 모습이 당장은 아이들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두려움에 의한 것임을 안다.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신뢰는 오래갈 수 없다.
이렇게도 잘 알고 있는 데, 매일 같이 다짐하고 되뇌는데
난 오늘 기어코 아이들에게 거인이 되고야 말았다.
드디어 6학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지난 시절의 외로움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이곳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정확히 포기할 건 포기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학년이 올라가고 아이들이 섞이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기뻤다.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열린 교실에서 떠날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작은 바람과 달리 담임 선생님은 엄청 무서웠다.
연세가 꽤나 있으신 남자 선생님이셨다.
평소에는 재미있으셨는데 화낼 때는 호랑이 선생님이란 상투적인 말이 절로 나왔다.
담배를 엄청 좋아하셨다.
그래서 늘 곰방대를 들고 다니셨다.
가끔씩 곰방대 쇳대를 자유낙하하여 꿀밤을 주시기도 했는데 잘못의 경중에 따라 높이가 달라졌다.
우리 반은 개성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제 좀 다른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 생겨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거나, 여자 같은 성격을 가진 아이, 게임을 좋아하거나 유머러스한 아이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운동부 담당이라 수영부 학생들은 모두 우리 반에 모여있었고, 늘 그랬듯이 싸움을 잘하고 거친 아이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친구들이 생겼다.
덕분에 나만의 울타리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았다.
당시 유행했던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에 맞게 남학생 3, 여학생 3 또래 집단을 만들어 어울렸다.
그 밖에도 소소하게 장난치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복도에서 가끔씩 만나기 싫은 친구들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모른척하면 그뿐이었다.
수업 시간이 되었지만 선생님께서 조금 늦으셨다.
우리는 이때다 싶어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목소리에 묻혀서 점차 시끄러워졌다.
서로의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교실을 돌아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께서 우리를 얽매지는 않으셨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안 계시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 자유 시간이었다.
그때 '쾅'하고 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셨다.
속에서 나오는 욕을 억지로 참고 계신 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는 모두들 고개를 떨구고 숨죽이고 있었다.
우리 교실에는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심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지나가는 차들의 경적소리에도 나는 움찔거렸다.
그렇게 선생님께서 한동안 화를 삭이시는 듯했지만 이내 절제된 목소리로
“떠는 사람 앞으로 나와”
라고 말씀하셨다.
내겐 나갈 수 있는 용기 따위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늘 혼나던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 녀석 두 명이 불려갔다.
모두의 떠들었기에 본인들은 인정하는 얼굴이었다.
다만 앞에 불려 나간 것은 둘뿐이라는 것에 억울한 눈빛이었다.
아니 억울하기보다는 두려워했다.
나는 억지로라도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빨리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우리 반은 100대 맞아야 해, 더 떠든 사람 없으니 너희 두 명이 50대씩 맞아야겠다."
선생님은 말씀이 끝나자마자 회초리로 두 친구의 손바닥을 10대씩 때리셨다.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며 내는 소리가 더욱 날카롭게 들려왔다.
두 친구는 결국 눈물을 흘렸지만 선생님은 멈추지 않으셨다.
마음이 너무 불편한데 엉덩이는 의자에 더욱 밀착되었다.
“얘들아 우리도 나가자”
반장이 그 잔인한 침묵을 깼다.
우리 반 반장은 여학생이었다.
빨간 뿔테에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비교적 큰 키에 보기 좋게 날씬했고 얼굴이 이뻐 인기도 많았다.
공부도 늘 우수했고 컴퓨터도 잘해 늘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교실에서 한 번도 장난치거나 떠들지도 않았고 선생님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 적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반장의 의자가 얼어붙은 교실 바닥 위를 긁었다.
그는 “우리도 잘 못했잖아”라며 선생님께로 향했다.
잔다르크가 살아있다면 그런 모습일까?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 그렇게 정의로웠을까? 싶었다.
그날 처음으로 반장의 눈물을 보았다.
이내 다른 학생들도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반장 의자 소리는 그렇게 메아리가 되어 교실을 울렸다.
아이들의 대부분 일어났을 때 눈치를 보던 나도 일어섰다.
이내 화가 난 회초리가 바닥에 던져졌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가 되고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나가셨다.
여전히 눈물이 멈추지 않던 아이는 긴장이 풀렸는지 책상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몇몇 학생들은 대표로 매를 맞은 두 녀석을 위로했다.
청소 당번은 알아서 칠판을 닦아놓기 시작했다.
반장은 묵묵히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나는 그냥 그들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반 반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만약 반장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섰더라면? 비겁한 상상만 가득하다.
그때마다 반장이니까 선생님이 이뻐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반장이 되고도 선생님께도 적잖이 이쁨을 받았을 때에도 그런 정의감은 나오지 않았다.
6학년 담임선생님의 모습은 6학년 담임선생님인 내게 크게 자리 잡았다.
선생님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내가 6학년인 시절과 아이들을 동일시하면서 그때의 기억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컴퓨터게임을 나누고 가끔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 주셨다.
그 모습은 지금의 나의 모습에 오마주 하려 노력하고 있다.
세월이 변하고 학생들도 달라졌지만 13세의 감성을 크게 떠나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배우지 말아야 할 것도 남아버렸다.
우리가 잘 못을 했을 때 선생님은 정말 크게 꾸짖으셨다.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거나 매서운 말을 하실 때도 있었고, 심할 때는 매를 들기도 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고치는 데 가장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선생님이 된 지금도 격한 감정의 끝에는 항상 화가 나 신 선생님이 계신다.
애써 외면해보지만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떠나가질 않는다.
결국 나는 또다시 교실 속의 거인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