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짝꿍바꿔줘
엄마.
반 편성을 하다 보면 애들을 의도적으로 섞을 때가 있어.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선생님들끼리 몇 번을 점검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봐.
그럼에도 불화는 생기기 마련이야. 아이들의 궁합을 모두 알 수 없으니까.
올해도 물론 원하지 않는 친구와 한 반이 될 수 있었겠고 심지어 그 아이와 짝꿍까지 될 수 있겠지
짝꿍 정하는 건 담임 선생님 재량이야.
아이들과 학급 규칙을 세워 결정하는 분도 있고 제비뽑기를 할 수 도 있어.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돌려. 정말 조작은 없었어.
아니 조작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그렇게 짝꿍을 만들어 주지 않았겠지.
정말 상극이었던 아이들이 짝꿍이 되었어.
벌써 서로 얼굴을 붉히는 두 아이를 나도 적잖이 당황했어.
다시 할까 싶다가도 그러면 다른 아이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니까 참았어.
어려워도 규칙은 규칙이니까.
그리고 두 아이에게도 서로 알아가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야.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한 아이의 학부모께서 전화를 했어.
짝꿍을 바꿔 달라는 내용이었어.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짝꿍이 싫어 학교를 안 간다고 울었다는 거야.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어. 얼마나 속상했을까.
아이가 원하는 친구가 안된 것도 모자라 사이가 제일 안 좋은 아이와 짝꿍이 되었으니 말이야.
뭐 상대방 아이도 연락은 안 했지만 마찬가지였을 거야.
결국 짝꿍은 안 바꿨어.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어.
나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아무 일도 없었어.
드라마틱하게 아이들의 우정이 싹트지도 않았어.
그냥 서로 조심하면서 참으면서 그렇게 지낸 거 같아.
아이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친해지는 법은 몰라도 적어도 그런 사람을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느꼈을 거야.
학부님께 도로 내가 부탁드렸었어.
아이 짝꿍 바꾸는 일은 나한테 어려운 일이 아니야.
규칙이 있지만 갖은 핑계로 당장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근데 그렇게 울고 엄마가 전화해서 짝꿍이 바뀌면 아이는 앞으로도 그걸 기대할 것 같았어.
중고등학생이 되고 군대도 가고 어른이 되어도 말이지.
특별히 더 관심 있게 보다가 혹시나 불화가 생기면 바꾸겠노라고.
그냥 아이를 조금 더 믿어달라고 했어. 이만하면 잘 한 거겠지?
친하지 않은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보낸다는 거는 어른이 된 나도 참 힘든 일이야.
가끔은 싫은 사람한테 속 시원하게 너 싫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해.
그런 면에서 이 아이들은 나보다 나을지도 몰라.
벌써 싫은 사람 옆에서 버텨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래도 난 이 아이들이 좀 친해졌으면 좋겠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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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엄마가 생각이 난다.
오늘만큼은 우리 반 아이들처럼
엄마한테 실컷 고자질하고 싶다.
어두운 밤 침대에 누워 졸려 무거운 눈꺼풀을 참고
하얀 창에 검정 글씨로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오늘을
두 엄지로 두드려 내려가 본다.
선생님이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고
결혼하고 아빠가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다.
나도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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