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ep6.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 반에는 신비한 아이가 있다.
키도 작고 몸매도 호리호리하다.
공부를 썩 잘하진 못했지만 책을 좋아해 아는 것들이 많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어른들과 생활을 해서인지 아이들보다 나랑 대화 주제가 더 잘 통했다.
가끔은 어른들끼리의 대화로 착각을 할 정도다.
특히 성악가였던 어머니의 끼를 닮아서인가 음악을 좋아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신은 공평했던지 운동신경이 많이 부족해서 체육시간에는 늘 소외되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바쁘신 부모님과 자란 외동아들이라 늘 외로워했다.
방과 후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다.
내 곁에서 조잘조잘 거릴 때면 눈이 반짝반짝했다.
가끔 회의나 출장이 있어 바로 집으로 향할 때는 뒷모습에서 뭔가 쓸쓸함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그저 너무나도 귀여운 학생이었다.
늦은 저녁 전화가 왔다.
117 학교 폭력 신고 센터였다.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나 놀랬다.
우리 반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리고 전화한 아이가 그 아이라니, 당최 믿을 수가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두 대나 맞았다.
오늘까지만 해도 잘 지내 보였는데 무슨 일일까?에서 한 대, 왜 나한테 먼저 이야기하지 못했나?에서 두 대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가 미처 알아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그 아이와 그를 괴롭혔다는 아이들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세 번째 뒤통수를 맞았다.
그 아이는 친구들이 자기를 이용하고 괴롭혔다고 한다.
필요할 때만 친구인 척했다며 마음 아파했다.
다른 아이들의 대답은 더 기가 막혔다.
여태 친구로 서로 잘 지냈고 그 아이도 재미있다고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일단은 양쪽의 말을 다 믿어보기로 했다.
언제나 외톨이었던 시절 나에게 두 녀석이 먼저 다가왔다.
신기하게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 데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말투와 표정조차도 잊히지 않는다.
사실 그들과 만나기 전에도 내게 관심 가져줬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것이 호의였는지 동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두 녀석과 친해진 뒤 어쩐지 다른 친구들은 나를 멀리했다.
두 녀석은 참으로 비슷한 모습이었다.
둘 다 안경을 썼고 포동포동 보기 좋게 살이 쪘다.
늘 깔끔한 옷을 입고 다녔고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예상대로 부잣집 아이들이었고 공부도 엄청 잘했다.
예상대로 선생님의 관심도 많았다.
한 명은 우리 반 다른 녀석은 옆반이었는데도 둘은 친해 보였다.
부모님끼리도 잘 알아 함께 여행도 다녔다.
나와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 들에 비해서 나는 똑똑하지 못했다.
늘 자신감도 없었다.
교실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으니 선생님의 예쁨을 받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통지 표에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사교적임이라고 적혀있는데 난 그것이 아직도 미스터리하다.)
그들만큼 가정 형편이 넉넉지도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이었다.
우리는 주로 그 녀석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놀았다.
학교 마치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그네가 두 개가 있었다.
언제나 한 명씩 올라가고 나는 항상 그 옆에 기대어 서있었다.
놀이터 가는 길에 늘 편의점에 가서 간식을 샀다.
그 들은 항상 내가 먹어보지 못한 비싼 것들을 사 먹었다.
내가 말없이 물끄러미 보면 조금 나눠주긴 했지만 부족했다.
한 날은 둘이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해 물었다.
수차례 나를 약 올린 후 놀이공원에 갈 계획임을 알려줬다.
당연히 같이 가보고 싶었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같이 갈래?”라고 한 녀석이 물어봤다.
하지만 내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다른 녀석은 말했다.
“쟤 돈 없어 못 가” 둘은 웃으며 그렇게 떠났다.
우리 집 사정을 내 입으로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는데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또 다른 날의 기억이다.
컴퓨터 게임이 한참 유행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지 않을 시절이다.
게임 시디를 구입하면 서로 빌려주거나 교환하며 게임을 즐기곤 했다.
나는 컴퓨터가 없어 그들의 이야기를 전혀 이해 못 했다.
그냥 그 시디가 궁금했다.
좀 보여달라는 내게 그들은 “거지냐? 자 너 가져”라며 cd를 던져주고는 자리를 떴다.
CD 뒷면으로 내 못난 얼굴이 비춰졌다.
우리는 같은 영어학원을 다녔다.
사실 영어 수준이 달라서 나만 다른 반이었다.
물론 그들은 최고 높은 반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내게 시비를 많이 걸었다.
둘이서 때리고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그들을 피해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끝내 쫓아와서 괴롭혔다.
무슨 용기였는지 문 앞의 한 녀석을 발로 차 넘어뜨렸고 그 사이 문이 닫혔다.
통쾌하기보다는 찝찝했다.
기분이 안 좋아 멍한 채로 수업이 끝났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가 복수하지 않을까? 이제 나랑 안 놀아주면 어떡하지? 또다시 혼자인가?
사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사이였다.
맞은 녀석이 내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깨동무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더 친한 척을 했다.
반강제로 끌려가듯 학원 문을 나섰다.
그리고 문 앞에서는 그 아이의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줌마는 협박스럽게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라며 나를 혼냈다.
그 뒤로 킥킥거리고 있는 두 녀석이 보였다.
씁쓸했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
난 그날 이후 이런저런 핑계로 학원을 끊었고 그놈들과도 점차 멀어졌다.
나에 대한 아쉬움이 하나 없이 여전한 그들과 마주칠 때면 화가 났지만 다시 혼자가 됨이 나쁘진 않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고구마가 삶겨지고 있을 것이다.
뭣하러 걔네랑 어울렸나 걱정 어린 오지랖이 떠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해본 사람은 안다.
‘다른 친구들이랑 놀면’이라는 것은 선택지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단 한 번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는지 광역시 단위 수학경시대회 상을 받아 쉬 대표로 전국 대회에 나갔다.
그곳에서 같은 대회에 참가한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상자 명단에서 본 그 이름이 다른 사람이길 바랐다.
물론 멀리서 존재만 확인했을 뿐 마주할 일은 없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 말투와 표정은 여전했다.
후문으로 그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한다.
대회 수상 특혜로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문제만 읽다 왔다.
채점할 필요도 없는 텅 빈 정답지를 내었다.
문득 어른이 된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궁금하다.
당연히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시절 나를 기억이나 할까? 잊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대회 날 나의 하얀 정답지처럼 내가 채점할 필요도 관심 가져야 할 것도 아닌 일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연이 끊어진 것이 나에게는 더 잘 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어울릴 수 없었던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사람들에게 대한 불신이 생겼다.
아니 언제 떠나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내가 필요 없어지거나 흥미가 떨어지면 떠나갈 것만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 돋보이려 하고 남들에게서 존재감을 더 확인하려고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참으로 피곤한 스타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