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가 되고 싶은 꼰대(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4)
아... 꼰대라
최근 한 2년간 내가 자주 듣고 듣기 싫어했던 단어이다.
유난히도 내가 아끼는 친구놈과 후배들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뭐 나는 꼰대라는 단어를 선배나 선생님께 쓰지 않았지만 비슷한 감정은 가졌던 거 같다.
떄론 기분이 나빴지만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난 꼰대에 대해서 연구하기로 하였다.
인터넷에서 꼰대를 검색하였다.
일단 주로 부모나 선생님이 대상이었고..
뭐 대강 이런 뜻이다.
난 그들에게 아버지나 교사가 아니니까 아닌거 같고
사실 나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사람에게
조언(사실 조언이란게 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일반화하여 이야기 하는 거 아닌가??)하는게
나쁜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백과사전이 아닌 블로그등에서 찾아본 결과
가장 와닿는 정의가 나타났다.
“묻지 않았는데 알려주는 것”
아.... 아....
그 후로 난 그들에게 조언의 문을 닫았다.
단, 물어보면 미친듯이 알려줬다.
결과는 일년이 지나도 난 그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들은 나에게 “변했다”, “자신을 싫어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뭘 어쩌라는 건가... 꼰대가 무엇인가
꼰대와 멘토는 또 무슨 차이인가?
꼰대는 어찌하여 멘토가 될수 있을까
다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교감선생님이 내 공문을 자꾸 수정해주신다.
다른 선생님들은 한두번에 통과될 일을
나는 서너번 많게는 여덞번까지 해봤다.
물론 내가 서투르고 덤벙되서 그런 것을 안다.
어느날 이렇게 이야기 하신다.
“내가 서부장 잘 알려줘서 장학사를 만들던 뭘....”
순간 고마워야 할 마음인데 나도 모르게 속으로
“누가 알려달래? 누가 키워달래?”라는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정반사라고나 할까?
쉽게 말해 지적질에 대한 반발감
그 것이 지극히 옳은 것인 줄 알면서
내 자존심만 앞서는 불안정한 심리상태이다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이고 오히려 고마워해야할 상황인데 왜 내 마음속에 그런 반응이 왔을까?
나 역시 그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혹은 비슷한 모든 상황에서 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배움에 대한 절실함과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을 때도 있었다. 그 깨달음을 잊지 못해 아직도 그들을 떠올릴때도 있다. 그 모두가 꼰대는 아니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과 나를
더이상 꼰대로 만들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내 경험을 구조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꼰대란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꼰대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내가 보인 친절이 오지랖이 되고
다른 사람의 친절을 불편하게 느꼈을 때,
정확히 정의를 내리긴 어렵겠지만
내가 찾은 차이는 ‘마음의 준비’다
상대방이 본인과 무엇인가를 공감할 준비가 되어있으면
꼰대가 멘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멘토(이제부터는 꼰대가 아니고 멘토라 하겠다)는 항시 멘티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수 있는 준비가 될때까지는 섲불리 조언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공감으로 기다려줘야 한다. 또한 말뿐이 아니라 그 조언이 멘토의 삶으로써 증명되어야 하겠다.
멘티는 멘토에게 자신이 배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오필해야된다. 그것이 지나가는 안부이든 간단한 질문이든 중요치 않다. 더불어 검색포털의 지식인과는 달리 멘티로써 맨토에 대한 공경과 조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 둘이 마음이 맞았을 때 서로의 열정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일반통행은 없다
나이로 경력으로만 따진다면
멘토는 멘티의 열정과 패기를 믿고, 앞만보고 도전할 수 있게 자신의 경험과 식견으로 최대한 지켜줘야한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본인도 잊고 있던 열정의 불씨를 찾고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흔한 복수무협영화에서 처럼
스승은 불현듯 제자앞에 나타나고
제자는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정의를 실현하곤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꼰대이자 멘토
또 다르게 말 안듣는 후배이자 멘티로 살아간다
이제 2018년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마지막 까지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내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