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프롤로그
엄마 기억나? 꼬꼬마 시절엔 엄마가 시장에 가면 손 꼭 붙잡고 곧잘 따라다녔지.
그때는 엄마랑 사 먹는 떡볶이가 너무 좋았어.
조금 크니까 철이 들었는지 엄마 손에 쥔 검정 비닐봉지가 꽤나 무거웠다는 걸 알게 되더라.
그래서 짐꾼으로나마 따라나섰어.
사실 조금 귀찮기도 했어.
공부도 해야 하고 피곤하기도 했어.
떡볶이도 예전 맛이 아니었고.
나는 처음 보지만 엄마랑은 꽤나 친해 보이는 시장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고 누구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꼭 “우리 작은아들”이라고 소개해줬어.
그럴 때마다 “아 그 공부 잘한다는?”이라고 하시더라.
사실 그게 서울대 다니는 형이랑 헷갈린 건가 싶었지만 엄마가 으쓱해하니까 그냥 뭐 꾸벅 인사드렸지.
시간이 흐르고 대학생이 되고 취직을 하면서 자취를 했지.
한 번씩 찾아가는 대구 집에 가면 엄마는 시장에 가면서도 나보고 피곤하다고 그냥 쉬라고 했지.
오래간만에 소파에서 뒹굴거리면 별거 없다며 혼자 시장에 다녀온 엄마의 양손에는 뭔가를 가득 들고 오곤 했어.
고작 두어 끼 먹고 내일 갈 텐데 말이야.
다음 번에는 기어코 시장에 함께 갔어.
세월이 지나 거칠어진 엄마 손이 여자 친구에게 익숙해져 버린 내 손을 잡았어.
어릴 적에는 수도 없이 잡아달라 안아달라 업어달라 졸랐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찾아간 시장에는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여전한 상인 아주머니께서 계셨어.
손을 꼭 잡고 작은 아들이라 먼저 소개한 엄마에게 아주머니께서는 방끗 웃으며 말씀하셨지
"아 그 선생님 한다는 아들?”
가끔씩 나도 엄마한테 고자질 좀 하고 싶어
아니 어쩔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짠 하고 나와서 해결해줬으면 좋겠어
그냥 한없이 내 편이라도 들어줬으면 좋겠어.
어릴 적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가장이 되니까 그게 쉽지가 않아.
아내한테 털어놓기에는 무책임해 보이고
동료에게 털어놓기에는 약하게 보일 거 같고
친구에게 털어놓기에는 자존심이 상해
엄마 아빠는 걱정할 까 봐 또 하기 싫었어.
엄마도 아빠도 이렇게 견디며 우리를 키웠겠지?
언젠가 심하게 따뜻했던 크리스마스날 엄마가 전화했었어.
난 직감했지.
아이고 또 아빠랑 싸웠구먼.
결혼기념일이 크리스마스인 엄마 아빠는 거의 매년 싸웠지.
겉은 강해 보여도 속은 여린 엄마랑,
완전 경상도 옛날 아저씨 겉은 다정해 보여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니까.
아빠는 아빠대로 나한테 전화해서 속상하다고
엄마는 엄마대로 나한테 속상하다고 털어 놓고는 했어.
근데 그날은 좀 달랐어.
엄마가 술을 먹었나 보지.
맥주 한잔도 못 먹었던 엄마가 혼자 소주를 다 먹고 나한테 전화해서 옛날일 꺼내며 미안하다고 했어.
속상해도 어디 털어놓을 때가 없어서 작은 아들한테 이렇게 말한다고 이해해달라도 했어.
엄마의 취중진담이라... 받아들이기 쉽진 않았지만
그동안 이렇게 혼자 쌓아뒀을 엄마를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아프더라.
근데 아픈데 좋았어.
슬픈데 기뻤어.
걱정은 되는 데 행복했어.
미운데 보고 싶었어.
엄마가 나한테 고자질해줘서 너무 좋았어.
이번에는 내 차례야.
무뚝뚝했던 엄마 아들도 나도 엄마한테 고자질 좀 해보려고.
좀 많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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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힘들 때가 있다.
힘들 땐 엄마가 생각이 난다.
오늘만큼은 우리 반 아이들처럼
엄마한테 실컷 고자질하고 싶다.
어두운 밤 침대에 누워 졸려 무거운 눈꺼풀을 참고
하얀 창에 검정 글씨로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오늘을
두 엄지로 두드려 내려가 본다.
선생님이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고
결혼하고 아빠가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다.
나도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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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에듀콜라가 온라인 수업 이야기들로 가득 찼네요 ^^
저는 잔잔한 에세이로 지친 마음을 달래 드릴까 합니다.
지난 연재글 /홀로 남겨진 기분/은 혼자서 독백하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엄마한테 고자질하는 제 이야기가 되겠네요.
물론 저희 부모님께서 이 글을 보지는 않으시겠지만요.
여러분들도 가끔씩 부모님께 다 털어놓고 싶을 때 없나요?
아니면 어린애 마냥 부모님이 짠!하고 오셔서 처리해주시를 바랄때 없나요?
내가 어른이 될 수록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되고
듣기 싫은 말도 참아야하는
부족한 어른이의 고자질 한번 들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