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피해자 정리 (연재 중단 안내)
피해자
아팠다.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아픔을 피해 숨어버려도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중학교 시절도 버텨내니 버텨졌다.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너무나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기에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많고, 잊힌 기억들도 더러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보다 더 떠올리기 힘든 순간이었다.
가끔 중학교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게 느껴진다.
훗날 훈련소를 다녀와서 그 속에서 느낀 감정이랑 비슷했다.
어쩔 수 없는 인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행복했던 기억들도 많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6학년 전체 300여 명 중에 딱 8명이 배정받은 중학교였다.
처음에는 그나마 친했던 아이들과 모두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컸다.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차피 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 출발하겠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부모님은 내게 걱정이 많으셨다.
그 시절 두 분이 특히 다툼이 많으셨다.
중요한 건 그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때는 원망을 많이 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두 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버텨주셨기에 내가 그나마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을 떠나 멀리서 공부를 했던 형의 마음도 그리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험난한 정글에서 나는 무리를 잃어버린 초식동물일 뿐이었다.
으르렁거리는 맹수들 사이에서 생존이 나의 유일한 목표였다.
중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서운 아이들이었다.
더욱이 모두가 예민하고 거친 사춘기 시절 남중학교에서의 생활은 내게 투쟁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가장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일명 일진이라는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이라는 공포를 요령껏 피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학급임원을 하면서 선생님의 그늘에 숨어 작은 권력을 누리기도 하였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시련들을 하나씩 버텨내면서 사회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일찍 터득한 것 같았다.
나를 버티게 해줬던 것은 역시 사람들이었다.
내게는 바쁘고 힘들어도 내게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셨던 엄마와
하늘이 무너져도 내 앞에서는 의연하셨던 아빠,
한 주간 피곤했을 텐데 토요일이면 함께 피시방에 데려가 놀아 줬던 형,
그리고 먼 거리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라는 존재를 확인시켜줬던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그 시절 그냥 미쳐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춘기 시절을 술에 취했던 것 같다고 표현을 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무엇을 했는지 사실 딱히 기억이 잘 안 난다.
김경호의 노래를 좋아했고, 스타크래프트를 책으로 배웠다.
친구들과 브레이 킨 댄스 따라 했고 만화책을 즐겨봤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냥 중학생이었을 뿐이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답게 자기중심생각이 강했다.
왜 나한테만 이런일이 벌어질까? 왜 나에게만 그러는 걸까? 라며 '나만'이라는 생각에 깊게 잠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도 내게는 동정받는 부끄러움이 되었다.
내게 주워진 기회조차도 내 일이 아니라 의심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도 믿을 수 없었고 그런 생각들은 나는 스스로 나를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피해자였다.
2학년 시절 포텐이 터졌는지 갑자기 성적이 올랐다.
‘더 이상 부모님께 의지할 수 없겠다’라는 판단이 섰을 때로 기억한다.
15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공부밖에 없었다.
성적이 오르자 주변인의 시선도 달라졌다.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부모님도 한시름 마음을 놓아 보였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무사히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너무 많은 풍파를 겪은 탓인지 고등학교에 간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아니고 자만심이었다.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 대부분은 실업계로 향했기에 해방감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얽매이고 핍박 당했던 세월의 한이 터져 나온 것인지 고등학교에 올라간 나는 더 과감해졌다.
그런 고삐 풀린 망아지는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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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가해자는 잠시 연재 중단을 하고
다른 내용을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제 마음도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도
공소시효가 남은 느낌이어서 정리가 좀 필요하네요
그 동안 못난 글, 못난 이야기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꼭 나머지 이야기도 여러분께 고백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참 지독하게 고독한 것이 삶이지만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진심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끝없는 설빙위에서 차디찬 칼바람이 지나가길
서로 등부비며 버텨내는 펭귄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