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극과의 만남, 변화를 만들다
원래는 오늘부터 활동에 관한 것들을 포스팅할까 했지만 이야기는 한번 하고 싶어서 오늘까지는 글로 포스팅을 남깁니다.
저는 원래 좀 활발한 편입니다. 사실 저 같은 사람들은 뭘 해도 활발하게 참여하긴 합니다. 재미없는 것 빼고.
하지만 이번에 쓸 이야기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과 교육연극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잠자고 있던 씨앗에 싹을 틔우다 - 전국교사연극모임
전국교사연극모임(전교연)에서 하는 연수를 처음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총 5일의 합숙연수에서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여리여리해 보이는 40대 선생님(이상 여리쌤)께서 자기소개를 다음과 같이 하셨다.
“저는 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 남들 앞에서 표현하는게 많이 떨리고 두렵습니다.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도 참 긴장이 되어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해나갈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3일째 되는 날, 간단하게 주고받는 반복적인 대사들로 짧은 상황극을 만드는 시간이었는데 그 분과 내가 짝이 되었다.
나 : 쌤, 우리 무당과 귀신 컨셉으로 한번 해볼까요?
여리쌤 : 네, 좋아요!
나 : 네? 지,,진짜요?
여리쌤 : 그럼요. 한 번 해봐요!
농담조로 한 말을 그분이 덜컥 물으셨다.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연습을 하는 내내 나한테 더 열심히 해보라고 장난스런 구박을 하셨다. 그리고 발표의 시간!!
이 사람이 첫날 수줍게 자기소개를 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분은 신들린 사람의 역할을 정말 정말 리얼하게 표현하셨다. 충격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바뀔수 있다니!!
그 때의 강렬했던 경험. 이 경험을 교실로 가지고 온다면?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한다면? 이런 상상을 하니 가슴이 정말정말 두근거렸고 그래서 교육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2. 내성적인 아이, 입을 열다. - 교실에서 만난 교육연극
학기 초 아이에 대한 파악이 아직 안됐을 때 한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가 아무 대답이 없길래 그냥 기다려 주었다. 그랬더니 얼굴이 빨걔지고 동공이 흔들리고 몸이 막 떨리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아주 내성적인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과 연극놀이를 시작하는 시기에 ‘정지장면 만들기’를 했다. 이야깃 속의 한 장면을 한 장의 사진처럼 정지된 동작으로 나타내는 놀이이다. 그 아이는 나무역할이었고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아주 짧은 대사를 한마디 하게 했다. 역시나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00이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도 불안해하는 나무 역할을 이렇게 눈동자를 굴리는 것으로 아주 잘 표현 했어요.” 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다음에 뭔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가 오면 그 때는 한번 해보렴.”이라고 속삭여줬다.
1학기 중반이 지나갈 때 쯔음 같은 상황에 그 아이가 드디어 입을 한마디 뗐다.
“아!”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아!’라는 감탄사였다. 시간이 흘러 2학기 중반, 그 아이는 무릎을 꿇고 비는 행동과 함께 “돈 좀 빌려주세요.”라는 대사도 즉흥적으로 해내는 아이가 되었다.
학년 말에 1년을 돌이켜 보며 어떤 활동들이 좋았는지 조사를 했는데 그 아이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연극으로 수업을 해서 너무 좋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다음 해에 방송 반에 지원을 했고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지만 아나운서 역할도 한 번씩 해보는 아이가 되었다.
#3. 사고패턴, 행동패턴의 변화
사람은 자기만의 생각과 행동의 알고리즘이 있다. 또한사람은 익숙한 것을 편하게 여긴다. 때문에 자라면서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고 사고와 행동을 패턴화 시킨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미 부정적인 패턴을 답습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학급에서 만나는 ‘그 아이’들을 아무리 지도해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교육연극은 앞에서 소개한 여리쌤과 00이의 경우처럼 사고패턴과 행동패턴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기존의 사고패턴이 아니라 맡게 된 역할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행동해보면서 나의 사고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내가 가진 익숙한 사고패턴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것이다.
#4. 인생을 연출하다. - 배우에서 연출가로
인생은 연극이다. 세계는 모두 무대다. 그리고 모든 남자와 여자는 단순한 연기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출구와 입구를 갖고 있다. 저마다 인간은 자기 인생의 다양한 역할을 연출한다. -세익스피어
페르소나(가면)라는 말이 있다. 외적 인격이라고도 하는데 내면은 그대로 둔 채 여러 상횡에 맞는 외적인격(가면)을 만들어 마치 자기는 그런 사람인것 처럼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신의 원래 모습과 외적 인격의 차이가 클 때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심할 경우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이 오기도 한다. 세익스 피어의 말은 이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페르소나를 쓴 나'는 배우로서의 역할만을 한다. 배우를 연출가의 연출에 따라서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해내는 수동적 존재라고 본다면 연출가는 능동적으로 작품을 써내려 가고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배우가 아닌, 연출가의 모습으로 자기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연출 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내 삶에서 지금 필요한 새로운 배역을 만들어 내고 그 배역을 맡아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연극은 이렇게 자기 인생의 연출가로 살아가는데 의미있는 경험들을 제공한다.
#5. 작은 성공 경험의 집합
교육연극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온전히 집중 받게 된다.
존재감이 없던 아이가 순식간에 중심이 되기도 하고 내성적인 아이가 하는 행동과 말들이 아이들에게 몰입감을 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자신과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각각의 순간들은 찰나의 순간들이지만 어떤 아이들은 그 순간, 엄청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작은 도전이며 작은 성공이 된다. 그리고 이런 작은 성공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새 큰 변화가 일어나있고 이는 아이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 나의 변화
나는 활발한 편이고 사람들 앞에 나를 잘 드러내는 편이다. 그렇다. 잘 나댄다고도 한다.
전교연 연수는 이런 나에게 앞서 이야기 했던 충격을 주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연수가 진행되는 동안 내성적이었던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들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그들의 위트에 놀라고 놀라고 또 놀랐다.
그렇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재미있게 잘 표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표현들을 보면서 나는 그저 조금 더 용기(?)있는 사람일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하게 되면 내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어보려고 한다. 아, 아름다운 변화인 것 같다.
이처럼 교육연극은 하나의 수업활동이나 놀이를 넘어 우리들의 삶 자체이다.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나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교육연극의 힘이 아닐 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