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이름을 불러줄래요?
영어시수로는 시수가 한 시간이 부족하여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시간에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그중 이번 시간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토의를 하는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자, 그럼 모둠 토의를 위해 두 모둠으로 나눌게요. 같은 색의 동그라미를 뽑은 사람들끼리 같은 모둠입니다."
하고선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누가 누구와 같은 모둠인지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김 뿅뿅", "이갹갹", "박...."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던 중 갑자기 원래 알고 있던 학생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순간 약 2초의 정적이 흐르고.
"박 모모요."
기다리다 답답한 학생이 본인 입으로 자기 이름을 말합니다. 몰라서 못 부른 게 아니지만 괜스레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보통 학생들의 이름을 모르면 교실에서 '거기', '얘야', '누구 뒤에', '파란 옷. 그래 너. 방금 뒤 돌아본 사람'. 등 이렇게 부르게 됩니다. 이름 대신 제삼자를 칭하는 어휘를 선택하거나 다른 학생의 위치를 중심으로 얘기하거나 학생이 입고 온 옷 등을 이름으로 부르는 거죠. 이렇게 부를 때면 그 학생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아 속으로 뜨끔하고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을 만나기 전에 학생들의 이름을 눈에 익혀둡니다. 교생실습 때에는 실습 학급의 학생들 이름들을, 교사가 되고 난 뒤에는 그 해에 만날 학생들의 이름들을 미리 보고 글자와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저학년 담임교사였을 때에는 학기초 프로그램으로 친구 이름을 외우는 놀이를 꼭 하고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가까워지고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름을 모르면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서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위의 상황과 같이 이름을 깜빡한 날에는 나와 그 아이가 그동안 맺어온 관계에 금이 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교과전담교사가 된 후 학생들에게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영어 선생님입니다. 한 번은 쪽지시험에 보너스로 제 이름을 쓰는 문항을 낸 적이 있습니다. 제 이름을 알고 써낸 학생들은 주로 수업시간에 자주 소통하고 쉬는 시간에도 친하게 얘기를 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영어실에 있는 영어 선생님의 이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영어 선생님은 영어실에 있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선생님으로만 불리면서 저는 학생들과 점점 내포를 형성하는 데에 소홀해졌습니다. 영어라는 과목을 잘 가르치는 데에만 집중하고 수업시간에만 충실하게 보내면 영어 선생님으로서 소임은 다 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학생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시간이 끝나면 계약 시간이 끝나는 지식 습득자와 지식 전달자의 관계로 머무는 것입니다. 교사든 학생이든 간에 이름을 잃어버리면 객체화가 되는 것은 사람이기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름을 외우고 부르는 것은 학교 전체 교육활동에 비교하면 정말 작은 일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아는 것만큼 가장 기초적인 일도 없다고 봅니다. 서로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관계를 맺고 싶다면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성적 입력 시즌이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출석부를 펼쳐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