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좋아하세요?
이건 생전 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나비를 기르며 겪은 혼란의 사랑 이야기다.
3학년 과학 교과과정에는 '동물의 한살이' 단원이 나온다. 동물의 한살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배추흰나비'를 기르며 나비의 일생을 관찰하는 것이다. 배추흰나비가 '알'일 때부터 시작해서, 애벌레, 번데기 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나비가 될 때까지 여정을 교실에서 함께하다 나비가 되었을 때 아이들과 멀리 나비를 보내주는 것으로 끝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는데 3학년을 맡게 되어 곤충이지만 동물을 처음으로 길러보게 되었다. 강아지랑 고양이가 무섭고 싫다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우리 집에는 동물이 없었다. 나도 어릴 때는 엄마의 영향으로 다른 집 반려견을 보면 괜히 피하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하였다. 살면서 동물을 키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고양이와 강아지가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제는 귀엽다는 이유로 철없이 동물을 집에 들여 감히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런 동물 기르기에 소질이 없는 내가 교실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배추흰나비를 기르게 된 것이다.
첫 만남 :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알도 그렇다.
단원이 시작하면서 과학실에서 <먹이 화분>과 <알 화분>, 2개의 화분을 받았다. 2개 화분에는 배추흰나비의 먹이인 케일이 튼튼하게 심겨 있었고 다른 점은 먹이 화분에는 어느 정도 자란 애벌레들이 붙어 있지만 알 화분은 그보다는 조금 작고 말 그대로 배추흰나비 '알'이 붙어 있는 화분이다. 먹이 화분은 케일 화분으로 잎이 풍성하여 지금 붙어있는 애벌레와 나중에 알 화분에서 태어날 애벌레들의 먹이 역할을 해줄 화분이다. 먹이 화분에는 눈에 보일 만큼 자란 애벌레 2~3마리가 붙어 있었다. 먹이 화분은 애벌레가 통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큰 푸른 망에 쌓여있어서 배추흰나비의 터전이라기보다는 과학 관찰 상자의 느낌이었다. 알 화분은 배추흰나비의 알이 붙어있는 화분으로 손바닥만 한 케일 화분이다. 알이 잎사귀 뒤에 붙어있는 채로 오는 화분인데 배추흰나비알은 먼지보다 작아서 잎사귀에 붙어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처음에 알 찾기에 실패하고 겉에 두른 망을 걷어서 돋보기로 크게 보며 관찰하였다. 돋보기로 자세히 관찰하니 0.5mm가 될까 말까 한 연노랑 빛 알이 보였다. 알이 잎사귀 뒤에 붙어있다고 했는데 돋보기로 간신히 집중하면서 봐야지만 보일 정도였다. 잎사귀에 묻어있는 점 같은 걸 보고 알인 줄 알았건만 색깔이 과학책에서 소개된 거랑 달라서 의아했다. 역시나 그건 잎사귀에 묻은 겨 같은 거였다. 아이들도 자기들 손톱보다 작은 알이 안 보여서 찾는데 한참 애를 썼다. 어린이가 보기에도 알은 잎사귀를 한 번 잡으면 바로 사라질 정도로 조그마했다. 에게게? 이게? 이게 진짜 알이라고? 과학책에 실린 알 사진은 좋은 카메라로 찍어 선명했는데 생눈으로 보니 과학책에 나와 있는 사진처럼 주름이 있지도 않고 모양도 간신히 길쭉한 모양이 보일까말까 한 수준이다. 이때만 해도 이 곤충을 실험대상으로 생각할 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새끼 애벌레의 탄생
먹이 화분과 알 화분이 같이 있는 덕분에 우리는 애벌레와 알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었다. 알이 잘 안 보이면 애벌레를 관찰했다가 다시 알을 찾아보기를 반복했다. 과연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기는 하는 걸까 의심하며 지나가기를 며칠, 어느 날 알 화분을 보니 케일 잎사귀에 누가 파먹은 것 같은 구멍이 나 있다.
'구멍이 있다?'
'잎사귀에 검은 점들도 있다?'
애벌레다! 알 화분에서 내가 잎사귀 뒤에서 발견했던 알은 한두 개였는데 애벌레들을 손톱만 한 것까지 세어보니 모두 일곱 마리나 되었다. 나머지 배추흰나비알은 잎사귀 뒤에 딱 달라붙어 보호색을 띠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한두 마리에서 그칠 줄 알았던 작은 손바닥만 한 화분에 무려 일곱 마리나 붙어있었다니.
'이 쪼꼬만 녀석들. 너네도 살겠다고 귀신같이 몰래 붙어있었구나?'
다른 반보다 애벌레 숫자가 적을 줄 알고 걱정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알들의 애벌레가 무사히 부화해서 아이들이 관찰할 게 많아졌다는 데 안도했다. 어린이들도 모두 제각각의 성장이 있고 개성이 있듯이, 애벌레가 커가는 걸 보니 애벌레도 모두 같은 애벌레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애벌레는 연노랑과 아주 연한 연둣빛 사이의 색을 띠고 있으며 길이도 3mm 정도밖에 안 된다. 누르면 바로 죽을 것처럼 연약해 보인다. 그런데 그 연약한 녀석은 종일 잎사귀를 꼬물거리며 돌아다녀 하루만 지나도 잎사귀의 절반 이상을 먹었다. 일주일도 안 돼 알 화분의 잎사귀는 줄기만 홀라당 남고 더 먹을 잎사귀가 없어졌다. 먹을 잎이 없어진 애벌레들은 화분 밖으로 잎사귀를 찾아 화분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애벌레들을 어쩌면 좋지.
이사 가자~ 더 큰 화분으로
나에게는 알 화분 말고도 그런대로 아직 잎이 풍성한 먹이 화분이 남아있다. 알 화분의 애벌레들이 화분을 탈출하기 전에 큰 화분으로 이사시켜줘야 했다. 애벌레 기르기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애벌레를 손으로 직접 잡는 것이다. 옮겨주려면 애벌레가 알아서 잎사귀 위에 올라탈 수 있도록 잎사귀를 주변에 놓고 그 잎사귀로 옮겨줘야 한다. 잎사귀를 다 먹어 치워 줄기만 남은 알 화분과 먹이 화분을 가까이 두고 알 화분의 줄기와 먹이 화분에 있는 잎사귀가 서로 겹쳐져 애벌레들이 새집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살포시 대주었다.
알 화분에서 새끼 애벌레들이 꼬마 애벌레로 자랄 동안 먹이 화분에 있던 애벌레들은 제법 우람해져서 귀여운 새끼 애벌레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새집으로 이사해서인지 애벌레들은 그다음 날부터 금세 적응하여 먹이 화분의 케일을 점령하며 다니고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 내며 케일 잎을 초토화하는 게, 마치 그동안 내가 먹이를 안 준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모든 동물이 새끼일 때 귀엽다지만 어쩜 애벌레도 새끼 시절이 더 귀여운 걸까. 그렇게 애벌레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어린이들도 나도 매일 아침에 교실 문을 열자마자 하는 일은 애벌레가 무사한지 확인하는 거였다. 우리는 하루하루 애벌레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요즘 말로 애며들고 있었다.
하루하루 껍질을 벗고 더 커지는 애벌레를 보면서 다음날에는 얼마나 더 클지 기다려지기도 했다. 오늘은 얼마나 더 자랐을까. 내일은 얼마나 더 클까. 밤에 애벌레들은 잘 있을까. 어린이들도 수업 활동이 끝나고, 틈만 나면 뒤에 가서 애벌레들을 관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큰 한 마리가 먹지도 않고 자꾸만 기어 다니기만 했다. 왜 먹지도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닐까. 어디 병든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