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잊지 못할 수업(1)
대학원 생활은 쳇바퀴 돌리는 수업을 듣는 일상이 반복되는 나날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 후에도 가끔씩 불쑥 기억이 나는 수업이 있다.
1. 첫 시간에 아이스 브레이킹
누구나 그렇듯이 첫 수업 첫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단지 첫 수업이라는 뻔한 이유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교육공학기초'는 교육공학을 전공하면 1학기에 필수로 들어야하는 과목이다. 그 과목의 교수님은 그해를 마지막으로 정년 퇴직을 앞두셨다고 이미 소문이 났었고 소문으로 상상한 교수님은 이제 학문을 막 시작하는 병아리 대학원생으로서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일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의실에 들어서는 교수님의 모습은 나이가 지긋하면서 위엄있는 멋진 신사였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말씀으로 신입생이 된 것을 환영하고 축하해주시곤, 각자 자기 이름 소개를 시키신 후 빙고처럼 칸이 나뉜 종이를 나눠주셨다. 여기서 띵-했다. 이대로 계속 교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았는데 웬 종이 한 장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이야. 학교에서 내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사용했던 아이스 브레이킹활동을 여기서도 할 줄이야. '
그것은 다른 수강생들과 서로 질문하고 대답해서 칸을 채워야하는 아이스 브레이킹이었다. 예를 들면 서로 좋아하는 영화, 색깔, 가수 등을 물어보는 것이다. 교수님은 먼저 모든 칸을 채운 사람을 위한 상품으로 본인의 책을 거셨다. 갓 입학한 신입생이기에 교수님이 책을 주신다니 어떤 책일지는 몰라도, 왠지 쟁취하고 싶어진다. 다 큰 성인들이지만 모두 치열하게 임했고 난 경험자의 순발력으로 상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은 펴보진 않았어도 지금도 내 서가에 꽂혀있다. 이 활동을 하며 어색하고도 먼저 말을 트기에 눈치가 보이던 강의실에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대단한 아이스 브레이킹이 아니지만 이런 활동 보다는 대부분 세미나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원 수업에서 오티 시간의 아이스 브레이킹 활동은 대학원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그 이후 난 이런 오티를 하는 수업을 만나지 못했다. 수업에서 이렇게 활동적으로 치열했던 적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2. 도서관 투어
글을 읽고 쓰는 걸 업으로 삼는 대학원생은 누구보다도 도서관을 가까이 해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를 경험하고 돌아온 대학원생은 갓 입학한 학부생보다도 학교가 낯설고 모든 것에 서툴다. 학부생은 멋진 선배가 이것 저것 가르쳐주며 캠퍼스 투어를 가장한 친해지기 기술을 시전하는 선배에게 어깨너머 배울 수 있지만 대학원은 각자도생이다. 먼저 나서서 가르쳐주는 이 없고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할 우물을 파야된다. 따라서 대학원생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법을 잘 모를 수밖에 없고 졸업할 때까지 어떤 다양한 도서관 서비스가 있는지도 모르고 졸업할 수있다. 예컨대,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주제의 논문을 쉽고 빠르게 찾는 것이 중요한데, 예전에는 관련 문헌을 요청하면 도서관에서 지원을 해줬다는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쓴다는 서비스가 있었다고 한다. 점점 이 서비스를 알게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요청이 버거워서인지, 이제는 그 서비스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아쉬운 소식을 들었다. 새로 지어진 근사한 21세기 건물같았던 도서관 투어는 앞으로 도서관을 충분히 더 가까이 해줄 시간이었다.
도서관 투어는 어쩌면 무엇을 전공하든 간에 가장 기초이자 근본이 되는 활동이 아닐까. 이 역시 연륜이 넘치는 교수님이 다년 간의 대학원생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생각해내신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옆에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얼마나 대학원생이 도서관을 멀리하는 걸 보셨으면 이런 시간을 넣었을까 잠시 교수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았다. 맞다. 끄덕끄덕. 당장 나만해도 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할지 몰라서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 교수님이 정규 수업 커리큘럼에 도서관 투어를 넣으셨던 건 전공책도 많이 빌려보고 교양책도 많이 빌리고 논문작업에 열중하다가 힘들 때면 경치좋은 도서관 전경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으라는 말이었다는 걸 졸업을 한 후에서야 깨달았다.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