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새롭게 생긴 능력
네이버 공문에 대한 대처 능력
원격 수업을 하라고 정부가 첫 네이버 공문을 뿌렸을 때 우리 일학년은 ‘멘붕’이었다.
‘여덟 살 아이들이랑 원격 수업을 어떻게 해..?’
그러더니, 그다음 내려온 네이버 공문이 말하길, 초등1~2학년에는 ‘학습 꾸러미’가 나간다는 것이었다. 학습자료도 아니고 꾸러미라고 하니, ‘정부, 너 다 계획이 있구나?’ 기다려 보자. 라고 한숨 돌리려는데,
기사는 꾸러미를 준다고만 했지 ‘누구’가 없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우리는 전달받은 게 기사글이 전부 인데..? 네이버 공문이 뿌려진 날, 퇴근 후에도 동학년 단톡방은 불타올랐다.
꾸러미를 준다고 발표를 했다는 것은 정부도 저학년은 스스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원격수업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아무리 기계에 익숙하게 자란 세대일지라도 한글부터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온라인 클래스에 들어오게 한 다음 영상을 시청하고 과제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동학년 회의에서는 한창 조작 활동과 손 근육 발달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장시간 모니터를 보게 하는 것은 학생의 정서 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격 수업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원격 수업을 위한 학습 꾸러미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1학년도 처음인데.
우왕좌왕하는 혼돈의 주말을 보내고 교육부는 다시 네이버 공문으로 ‘EBS 방송’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다. 그 뒤로 몇 번의 네이버 공문을 접하자 더 이상의 놀람도 실망도 사라졌다. 대신, 교사로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습 꾸러미 기획, 제작 능력
EBS 방송으로 수업을 지원해주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방송으로 하는 수업은 하루에 2차시며 나머지 2~3차시, 주당 13차시 분량의 꾸러미를 만들어야 한다. 그때부터 우리 동학년의 무한 반복 꾸러미 회의가 시작되었다.
1) 꾸러미의 교육과정은 현재 교육과정이랑 연계하면서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2) 꾸러미의 수준은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할까?
3) 이 정도면 한 차시 분량이라고 할만한가? 등.
네 명의 머리를 모아 맞대고 이야기를 하니 다행히 윤곽이 잡혔다.
우리는 1학년 교육과정의 골자가 되는 ‘한글 교육’과 ‘수와 연산’ 중심으로 꾸러미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EBS 방송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글자 쓰기와 수 세기의 연습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란 생각에서 나왔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때에 미리 한글 교육 연수를 들어놨길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꾸러미를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할지 매우 막막했을 것이다.
기존에 있는 한글 교육 자료도 있지만, 연수 내용에서 좋았던 것과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자료, 그리고 저작권이 걸려있어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자료를 섞어서 꾸러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피피티로 자음과 모음 카드를 하나씩 만들고, 쓰는 방법도 다 그리고, 학습지의 구성을 옆 반 쌤과 머리를 맞대며 차시를 구성하였다. 평균적으로 1차시당 4페이지씩 만들었고 4주 치를 묶으니 제법 두꺼웠다. 학년에 배당된 예상으로 처음 꾸러미는 인쇄소에 맡겨 책으로 제본을 했다. 완성된 것을 보니 누가 보면 어디서 파는 것을 가져온 것처럼 보였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봐줄 학부모님에게 꾸러미를 나눠주면서 하는 꾸러미 활용 방법, 차시 구성을 설명하였더니 우리 의 정성을 알아봐 주시는 분이 계셔서 고마웠다. 무엇보다 이걸로 공부할 아이들이 한땀 한땀 만든 꾸러미로나마 조금이라도 그들이 배워가는 게 있길 간절히 바랐다.
이후에도 우리는 원격수업이 이어지면서 매주 새로운 꾸러미를 만들어서 주었다. 가정에서 하는 공부일지라도 한 차시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우리 학년은 꾸러미를 만들기 전에 모여서 새로운 학습 자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토의하였다. 우리가 너무 적은 양을 준비하는 건 아닌지, 수준이 쉬워서 그날의 학습이 일찍 끝나버리진 않은 지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40분 동안 집중해서 하려면 어느 정도로 주는 게 좋을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렇게 진득한 회의가 끝나면 각자 담당할 것을 나누고 인쇄 전에 서로 오타가 없는지 수정본을 봐주고 피드백을 주었다. 서로 꼼꼼하게 확인하였지만, 어디선가 오타가 나오는 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 능력은 함께하는 동학년이 없었더라면 성장하지 못했을 능력이다.
이렇게 매주 열심히 준비했어도 아쉬운 기분이 들었던 건 아마 아이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약 없는 이별, 갑작스럽지만 만남은 1년 동안 내내 이어졌다. 이 긴 겨울이 끝나는 곳에는 반드시 봄이 오듯이, 새롭게 생긴 꾸러미 기획 능력이 더는 필요 없어지는 날이 금방 오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