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잊지 못할 수업(2)
1편에 이어서.
3. 외부 수업이라 쓰고, 나들이라 읽는다.
"밖에서 한 번 수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씨-익)" 하고 웃으시던 교수님.
"오예~~!" 환호를 질렀다.
외부 수업은 가을볕이 좋은 10월에 서울대공원에 가는 걸로 정해졌다. 가을날 서울대공원이라니. 대학원 수업에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다. 대학원생이 되면 아주 작고 소소한 것에도 고맙고 감동을 하게된다. 사실 시간과 날짜가 뭐가 중요한가. 그날 우린 학교를 떠나는데! 앞으로 몇 주가 남았지만 우리는 그날만을 기다린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프로젝트? 과제? 뭐든 와라. 상관없다. 교실밖으로 수업을 나가는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괜찮다.
어른인 나도 교실이 아닌 곳에서 만난다는 말에 설레이고 그날이 오기만을 곱씹는데 어린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가끔 교실 밖에서 수업했을 때 어린이들이 그렇게나 행복에 겨운 얼굴을 하고 방방 뛰어다녔던 것이 백번천번이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외부 수업을 가장한 서울대공원 나들이 날이 다가오자 같이 수업을 듣는 중국인 친구가 물어봤다.
"우리 그날 어디서 보는 거에요? 서울대에 공원이 있어요? 잔디밭으로 가는 거에요?"
서울(띄고) 대공원인데, 서울대(띄고) 공원으로 들은 것이다. 푸하하. 덕분에 잊지 못할 기억이 벌써 하나 더 생겼다.
하마터면 엉뚱한 곳에서 우릴 기다릴 뻔한 친구까지 함께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대공원으로 갔다. 동기들과 미어캣 흉내를 내며 웃긴 사진도 찍고 교수님과 잊지못할 셀카도 남기고 물살을 가르는 돌고래의 유연함에 놀라고 가을날의 정취를 즐기며 돈까쓰를 먹었다. 그 시간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성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짧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몇 시간의 시간동안은 학교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육공학과 관련된 수업 내용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런 내용을 대화의 주제로 꺼내지 않았다. 교수님은 온갖 과제와 프로젝트에 짓눌려있던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숨통을 틔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셨다.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만이 교실은 아니다. 열정으로 타오르는 곳도 배움의 공간이지만 고된 학문의 노동에 방전해버린 나의 뇌를 식히고 새롭게 충전하여 다시 배움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도 결국 배움의 길에 있는 공간이다.
4. 과제가 지독했던 수업
"진짜 지독하다 지독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수업이 있다.
나에게는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며 종강하는 그 날까지 내 발목을 붙잡은 과제가 있던 수업이 지독한 수업이었다. 물론 세상에 쉬운 과제란 없다. 하다못해 하루에 일기 한 편 쓰는 과제도 끈기를 요하는 과제인데, 일단 '과제'라고 명명하면 그것이 아무리 즐겁고 신명나는 일일지라도 흥미를 잃고 미루게 된다. 이런 마당에 우리 전공의 과제는 열에 아홉이 팀프로젝트 형식의 과제였다. 이 팀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하자면 밤을 샐 정도로 일화가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과제가 지독했던 수업을 떠올려본다.
대학원 가자마자 팀을 짜서 의뢰인의 요구에 맞게 교육 프로그램을 계획해야하는 수업이 있었다. 외부와 연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제는 클라이언트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실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기에 난이도가 있었다. 팀장으로서 의뢰인의 요구를 조율하면서 팀을 이끌어가는 것이 처음이라 어색하고 어려웠다. 팀원들과 밤늦게까지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교육자료를 만드는 암흑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과제는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여름방학 학회지에 과제 내용을 포스터로 발표해보는 기회로 연결되어 과제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첫 학기부터 이런 빡센 과제를 만나서일까. 그 다음에 수강한 많은 수업에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대시보드를 디자인 하는 생소한 과제들이 나왔지만 과제가 어려워보인다고 해서 겁먹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업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도 점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내가 지나온 수업을 돌이켜보니 대학원에 가길 잘했다. 솔직히 대학원 생활 힘들었다고만 징징거리고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수업을 정리하니 '나 꽤 대학원 즐겼네?'라고 생각이 든다. 그 모든 수업의 내용이 미주알 고주알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시간의 따스함과 즐거움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남아있다. 교수님들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