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바꾸기. 그 소소한 행복.
나는 2년 째 학교에서 영어전담교사를 맡고있다. 따로 담임으로 맡는 학생들은 없으며 수업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영어실로 온다. 작년에 영어전담 교사를 맡았을 때 따로 학생들 자리를 바꿔주지 않았다. 수업 진도를 나가고 평가까지 하려면 시간도 빠듯한데 어차피 담임교실에서 1달에 1번씩 바꾸는 것을 영어실에서까지 해야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새롭게 맡은 6학년 학생들은 본인들이 4학년 였을 때부터 영어실에서 자리를 바꿨다고 하며 학기초부터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교실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꾸는데 일주일에 3시간 밖에 안 듣는 영어실에서 왜 굳이 다른 사람과 앉겠다는 거지? 그래서 작년처럼 영어실 자리도 교실에서 앉듯이 앉으라고 하며 무심하게 지나가려고 했는데 매 시간마다 영어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요구하니 점점 모른 척 지나가기 힘들었다. 결국, 영어실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오늘은 9월 자리를 바꾸는 날이다. 오늘이 오기 2주 전부터 학생들은 영어실에 올 때마다 말했다.
"선생님, 짝 언제 바꿔요?", "짝 바꿔요!", "짝 바꾸고 수업 시작하면 안돼요?", "짝 바꾸고 싶어요."
"..." (나)
자리를 안 바꾼 2주가 2년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주말동안 나는 짝바꾸는 제비를 만드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쩐지 주말을 보내며 무언가를 잊고있는 찜찜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이들이 기다리던 짝바꾸기였다. 그래서 다소 고전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바꿨다. 먼저 남학생들이 교실밖에서 기다리고 그 동안 여학생들은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자리를 정하면 복도로 나가서 기다린다. 다음은 남학생 차례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남학생들이 들어와서 원하는 자리에 앉고 책상 위에 엎드린다. 엎드리는 이유는 누가 내 짝일지 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긴장감있게 기다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찾아가는데 자기 자리와 가까워질수록 여학생들은 자리에 앉길 주저하고 남학생들이 엎드렸던 팔 사이로 짝의 얼굴을 확인하면 교실은 곧 놀람, 경악(?), 그리고 환호(!?) 소리로 날아간다. (방금 짝의 눈과 마주쳤을 때 질렀던 소리만큼 수업 시간에 말하기를 하면 1년 뒤에 엄청난 성장을 할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바꿔달라고 애원해서 짝을 바꿔준건데 짝을 바꾸자마자 이런 소리가 들린다.
" 선생님, 저 얘랑 지난 번에 짝 해봤는데요.", "다시 앉으면 안 되나요?", "다음 짝바꾸는 날은 언제에요?"
"..." (나)
난감하다. 이럴 때 참 난감하다. 바꿔달라고 해서 바꾼건데,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선택해서 짝을 만난건데, 짝을 바꿨어도 금방 또 바꾸자고 한다. 학생들은 왜 이렇게 짝을 바꾸고 싶어할까?
생각해보면 나도 학교를 다닐 때 짝바꾸는 날을 기다렸다. 뭐라고 콕 집어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짝을 만난다는 기대감, 제비를 뽑을 때의 긴장감, 새로운 짝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혹시나 마음에 드는 학생과 앉을 수도 있을 거란 설렘들이 있었다. 짝 바꾸기는 학급에서의 큰 행사도 아니고 거창한 무언가를 배우는 수업도 아니고 그저 소소하게 지나가는 일상 생활 속 이벤트다. 그런데 이런 이벤트에 학생들은 열광하고 어릴 적 나 역시도 그랬다. 짝을 바꾼다는 것 하나만으로 학생들은 그 날의 학교 생활을 기대할 수도 있고, 학교에 오는 큰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작년의 나는 그것을 귀찮게 여겼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올해에도 학생들이 짝을 바꾸고 싶다고 할 때 왜 굳이 영어실에 와서 짝을 바꾸고 싶어하는지 이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학생시절을 돌아보니 나도 짝바꾸기를 기다리던 학생이었고 짝바꾸기는 반복되는 학교 생활에서 아이들이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벌써 짝을 바꿀 날이 세 번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엔 어떤 방법으로 짝을 바꿔줄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