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를 위한 개념과 멘트- 5) 내게 맞는 가르침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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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3:02
나에게 맞지 않는 가르침을 주려 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 필요한 이야기.
신규 교사, 저경력 교사.
이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다.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평가자
수업 컨설팅을 받는 선생님이 있었다.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저경력은 의무라고 했다.
수업지도안을 컨설턴트인 고참 선생님께 드렸다.
이런 부분은 다르게 고쳐 보란다.
그렇게 몇 번의 빠꾸를 당했다.
물론 잘못된 것을 아는 것도 큰 배움일 것이다.
또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게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 평가자의 자세여선 안 된다.
아픈 건 나도 안다.
의사에게 바라는 건 어떻게 나을 지다.
내 아픔을 함께 해결하려 하는 당신이길 바란다.
당신의 눈으로
공개수업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 선생님은 내 수업에서 '손 머리'를 몇 번 했는지 세었다.
반복되는 행동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했다.
물론 '손 머리'라는 방법이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아는 한 전체를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만약 그때 '손 머리'마저 없었다면, 그 힘든 아이들을 어떻게 멈추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다른 선생님은 산만했던 아이들이 많이 차분해졌다고 했다.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지만, 이를 통해 이루려던 내 방향을 알아주었다.
한 선생님은 내 '행동'을 봤지만, 다른 선생님은 내 행동의 '이유'를 봤다.
부족한 지금의 모습을 탓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난 그 부족함으로 오늘도 살아가야 한다.
부디 당신의 눈에 보이는 현재가 아닌, 나의 눈으로 볼 미래를 제시해줄 수 있기를.
'나'의 눈으로
예전 내 옆반으로 신규 선생님이 왔다.
아이들은 잘 잡히지 않았고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단호할 때는 좀 더 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저도 알고는 있지만 선생님의 방법이 전 되지 않아요.
아이들을 잡을 만큼 강하지도 않고 나를 그리 무서워하지도 않아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나도 내가 본 내 방식의 답만 주었다.
나는 여린 여선생님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알지 못했다.
사실 이 글이 신규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 내용은 아니다.
신규 선생님을 대하는 다른 선생님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글이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더 괴로운 잔소리를 듣게 하는 일은 없기를.
'이런 수업을 하라!'라고 하기 전에 '어떤 수업을 하고 싶어요?'라고 물을 수 있기를.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