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학교 바라보기] 20. 관계와 업무 - 3) 관계와 업무, 상위 가치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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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 09:27
관계, 업무에 관해 글을 이어가고 있다.
지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계와 업무 능력이 있은 뒤에는, 관계와 업무를 분별하라 했다.
이제는 상위 가치로 올라가야 할 때이다.
나와 다른 너
라디오에서 이런 얘길 들었다.
쌍둥이가 쌍둥이 형보고 못생겼다고 그런다고.
아무리 비슷한 사람도 위치가 달라지면 다른 사람이다.
똑같은 얼굴이라도 내 감정이 들어있는 곳은 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다른 입장의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겠는가.
교사에게 보이는 것과 학부모에게 보이는 것은 다르다.
교사는 학생 중에 한 명이지만, 부모에게는 내 아이 한 명이다.
교사는 교육을 얘기하지만, 부모는 내 아이에게 오는 교육을 말한다.
교사와 교장도 마찬가지다.
교장은 교사에서 되는 건데도 다른 사람이 된다.
학급의 학생을 보는 것과 학교 전체의 학생을 보는 것은 다르다.
교사는 교사로서, 교장은 교장으로서 봐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다른 곳에 서 있다.
그렇기에 대화해야 한다.
서로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도록.
정반합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장 차이만을 말하다 끝나는 경우가 있다.
학부모는 아이의 입장만, 교사는 교사의 상황만.
교장은 안 되는 이유만, 교사는 해야 하는 명분만.
자기 입장만을 말하는 대화는 답이 없다.
증상만 말하다 약만 처방하고 끝나는 의사.
아이의 문제만 말하다 가정에서 잘 지도하라고 말하는 교사.
매뉴얼, 공문을 가져와서 안 되는 이유만을 나열하는 교장.
결정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길을 제시하지 못하면 답답할 뿐이다.
부모는 아이의 억울함, 문제 상황을 말할 수 있다.
교사는 교육적 가치, 학급의 정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교사는 아이의 해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교사, 부모의 '합'의 가치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정, 반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 관계의 업무는 '합'이다.
상위 가치
길을 제시하는 교장이었으면 좋겠다.
불가능한 교육 현실만 말하지는 않았으면.
이런 건 바꾸고, 보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줬으면.
길을 찾아가는 교사였으면 좋겠다.
무모한 교육 의지로만 들이대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알아보고 확인해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가기를.
교장과 교사의 '합'은 교육이다.
때론 교장의 이상과 교실의 현실이 어긋나기도 한다.
자기 입장만의 교육을 논하면 안 된다.
교육의 이상은 현실을 기반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교사와 부모의 상위 가치는 학생.
구체적으로 학생의 성장 방향이다.
교사와 부모의 눈으로 봤지만, 학생의 관점에서 답을 제시해야 한다.
교장, 교사가 원하는 교육이 아닌, 진정 학생에게 옳은 교육이어야 한다.
당신이 속한 사회의 상위 가치는 무엇인가.
너와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연인에게 사랑이 없다면 쾌락만 남는다.
교사와 부모가 학생을 잊어버렸다면 교육은 없다.
기업가와 근로자가 소비자를 잊어버렸다면 이윤만 남을 뿐이다.
우리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하지만 공동의 목적이 없다면 같이 갈 수 없다.
관계를 지향하는 것도, 업무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상위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관계와 업무의 지향점이다.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