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학교 바라보기] 1. 꿈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꿈은 있는가(2)
생존을 추구하는 사회
2014년, 상시평가를 한다고 갑자기 난리를 치더군요. 본래의 취지는 정말 좋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하면 의미를 잃어버리지요.
같이 근무했던 교감선생님이 우리 반 평가지에 100점으로 적힌 것을 보고 뭐라고 하더군요.
만약 그때 교감선생님이 제도의 취지가 이러니 지켜달라고 했으면 저도 따랐을 겁니다. 하지만 100점화 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되었다며 다그치더군요.
저는 100점을 '20분의 몇'으로 표시하나 무슨 본질의 차이가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잘못된 것은 평가가 아이들을 줄 세워 서열화하는 것이 아닌가요? 더 근본적으로 아이들의 전인적인 평가를 하기 위함이지 숫자를 바꾸자는 게 목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누구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교감선생님께 대든 철없는 어린놈 밖에 되지 않았죠. 교육청에서 내리는 정책은 무조건 옳습니다. 위에서 내리는 정책에 토를 달면 안 돼요. 그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인지적 욕구를 가지면 안 되는 거죠.
심지어 그걸 전하는 윗사람에게 대든다니.. 교직사회에 개념 없는 놈이 추가되는 거죠.
직급이나 나이, 주변 시선 등의 문제로 말 못 하는 개인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요.
전 말리는 시누이들이 더 밉더군요.
그냥 죄송합니다 하랍니다.
물론 그들의 마음이 잘못됐다 말하기도 힘들어요.
하지만 쉬쉬하는 사회는, 말하지 못하는 사회는 욕구 수준을 아래로 떨어뜨려요.
어떤 사회, 어떤 상황에서도 진보와 보수는 생기게 됩니다.
하고자 하는 자, 말고자 하는 자가 나뉠 테니까요.
진정한 진보와 보수라면 어떤 사안에 대해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만두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논해야 할 거예요. 이 인지적 차원에서 논의가 되어 양쪽의 좋은 의견을 모아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사회 자체가 보수화 되어 버리면 그 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의미가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더 이상 옳고 그름을 논하지 못해요.
어차피 결론은 안전, 생존 욕구에서 결론이 날테니까요.
문제가 있어도 넘어갈 수 있는 문제를 건드리는 문제아가 더 싫어지는 거예요. 모난 돌은 정을 맞는거죠.
하지만 이렇게 다들 안정적인 사회를 꿈꾸며 생존하면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생존을 전가하는 권력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는 안전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교사는 2017년 말까지 안전교육 연수 15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아래는 연수 과제 내용이다.
세월호 사고를 시발점으로 하여 학교에서의 안전교육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사실 그 동안의 학교안전교육은 특별한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교사들에 의해, 그 효과가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일회성 교육으로만 진행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학교안전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안전한 학교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학교안전교육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제시한 내용에 부합되는 학교안전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3가지 이상 제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작성하시오.
난 과제를 이렇게 냈다.
1. 위의 밑줄부터 취소하십시오.
교사의 전문성을 소방관만큼의 구조능력, 건축가만큼의 건물 이해, 선장만큼의 항해 이해를 요구합니까? 밑줄의 말은 지금까지 교사의 교육을 아주 하찮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말입니다. 교사의 무능한 교육으로 세월호에 갇혀 죽었습니까?
2. 개인의 탓으로 책임전가 하지 마십시오.
다리가 무너져서 사람이 죽었으면 첫째, 다리를 만든 사람을 잡아서 책임을 물어야 하고 둘째,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관계부처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절대 다리에 들어가 있었던 사람을 탓하고 사람들에게 ‘돌다리를 왜 안 두드려보냐’고 말해선 안 됩니다. 지금 안전교육이 진정 안전을 위해 하는 교육입니까? 이 교육을 하면 배가 안 가라앉습니까?
진정 안전교육을 위해선 학생의 탓이라고 해선 안 됩니다. 안전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모두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안전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키우는 교육.
안전교육을 잘 하면 세상이 안전해집니까? 오히려 교육에 순종하고 잘 들으면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단지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학생으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위험을 찾아 없애고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안전교육 자체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안전교육만을 강조하면 세월호 안에서 '안내 방송'에 따르다 구명조끼를 입고 죽는 교사와 학생을 늘릴뿐이다.
안전교육을 한다고 세상이 안전해지지 않는다.
세상이 안전해 지는 것은 오로지 위험을 없애는 것 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위험을 무릅쓰는 세상 앞에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는 오로지 악을 방벌함으로써 정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