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학교 바라보기] 10. 이상적 교사와 현실적 교사(3)-위계
위계 조직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존엄과 만인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버릴 수도 없다.
어떡하든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조직의 위계를 인격의 위계가 아니라 역할 분담으로 해석하는 관점이다.
조직의 위계와 서열은 인격의 높고 낮음과 관계가 없다.
신분 차이나 지배, 종속 관계도 아니다.
단지 인격적으로는 평등한 개개인이 조직 전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합의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위계 조직 안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협력한다.
조직에서 지위와 서열이 낮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곧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이라는 이상을 존중하는 행동이다. - 40p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
난 이렇게 살고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조직 사회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가 보다.
역할
위계가 아닌 역할로 보면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다.
교장, 행정사, 행정실은 역할이 다를 뿐이다.
교장은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난 결재를 받는다.
난 실행하는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교무 행정사에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상대와의 역할 관계에 따라 말을 할 뿐이다.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방과 후 행정사로부터 이런 이야길 들었다.
"선생님은 저 같은 사람도 똑같이 대해 주시는 거 같아요."
그분은 나보다 나이도 많지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말했다.
현실은 위계를 지키라고 하지만, 이상은 내 역할을 다 하라고 한다.
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기 때문에 건방진 놈이기도 하고 고마운 놈이기도 하다.
관계
회식이 일의 연장이 되는 건 직장의 위계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이성이 무너지고 감정이 나온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 위계로 눌러버린다면 희망이 없다.
이성으로 감춰왔던 마음속의 감정마저 태워 없애야 하는지 모른다.
난 위계 속에서 견뎌낸 관계가 아니라 위계를 넘어선 관계를 원한다.
술자리에서 형, 형님, 누나의 호칭을 더 쓰려고 한다.
그 시간은 일의 역할마저도 필요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에게나 들이댈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다.
날 위계로 대하려는 사람에게는 그만큼만 하면 된다.
그래도 위계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준 인연은 내 삶에 남는다.
위계로 남아있는 관계는 일이 끝나면 사라질뿐이다.
함께
간혹 교사와 행정실은 서로 불편한 동거인처럼 여기곤 한다.
교사는 행정실이 교사의 업무에 최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행정실장은 결재를 받는 사람으로서 교사에게 올바른 절차를 요구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위계를 내세움으로 얻지는 않길 바란다.
내가 교사니까 막무가내로 행정실에 이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보기 흉하다.
내가 행정실장이니까 내 권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불편하다.
비단 행정실과 교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직급이 나뉘고, 위계가 나뉘는 모든 곳에서 있는 문제이다.
위계로 얻은 힘은 더 높은 위계에 잃을 것이다.
나는 일방적 요구가 아닌 역할과 관계에 따른 협력을 믿는다.
위계에 따른 권한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에 대한 존중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