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학교 바라보기] 9. 이상적 교사와 현실적 교사(2)-노력
'다운로드하는 교사가 될 것인가 업로드하는 교사가 될 것인가'
이런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좀 더 높은 가치로 올라가길 바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을 나무라는 말이 아니길 바란다.
현실의 노력
14, 15년 학급 아이들과 해오던 블로그를 올해는 포기했다.
독수리타법으로 키보드를 치던 그 아이가 키보드에 머리를 박으려 하는 순간 내가 꿈꾼 교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매일을 말리고, 씨름하고, 감정 소모를 한 뒤에 더 교육적인 이상을 꿈꿀 여력이 없다.
일기조차 써오지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거꾸로 교실을 할 수 없다.
전에 통합학급을 운영했을 때보다 지금 더 특수교사의 어려움을 공감한다.
꿈을 꾸는 교사는 심장이 타오르지만, 꿈을 잃은 교사는 속이 타들어간다.
지금도 극악의 환경에 처해있는 교사들은 생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일 것이다.
이상의 노력
난 노력의 단계를 도태, 나태, 잉태, 생태로 말했었다.
이상에 이른 당신은 생존의 도태에서 살아남았고, 만족의 나태를 이겨냈다.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여 무언가의 결실들도 얻을 것이다.
자신의 열정으로 극복하고 이룩한 당신은 어쩌면 도태되어 교육에 대한 의욕조차 잃은 누군가가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다.
또, 자신의 삶에만 만족하여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다른 이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결실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는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상이란 다시 현실을 위한 것임을..
상생
글을 쓰면 댓글이 필요하고, 책을 내면 독자가 필요하다.
다운로드하는 사람이 있기에 업로드한 무언가가 가치를 가진다.
한 명의 강의에는 훨씬 많은 사람의 청중이 필요하다.
현실은 낮고 이상은 높은 것이 아니다.
각자의 상황에서 노력하고 있는 그 모습은 숭고하다.
이름 없는 나는 유명교사를 예찬한다.
반대로 유명교사는 무명교사들을 예찬해주길 바란다.
길을 열어준 유명교사의 노력에 감사하며, 그 길을 따라갈 수많은 무명교사의 발걸음에 감사하며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