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나선생의 학교 바로보기- 15) 우리 다음 생에 만나면..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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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08:36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다음 생엔 내가 니 아들로 태어나마!"
주어진 관계가 너무 억울할 땐 이런 말도 나온다.
교사도 그런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악연
"아우.. 이거 왜 해야 돼?!
너네는 이게 재밌냐?"
뒤에서 궁시렁거린다.
차라리 나한테 말을 하던가.
혼잣말 인척 다 들리게 해 놓고선.
건의는 예의를 갖춰 말하면 들어준다고도 했는데.
차라리 별로라고 대놓고 말하는 무개념은 악의라도 없다.
차라리 대판 싸우고 풀 수 있는 남자애들이면 모르겠다.
반감을 드러낸 눈빛으로 지켜보는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네가 예민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어쩌면 내 방식이나 말이 너한테 싫을 수도 있었겠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린 이미 나빠져버렸어.
학연
어떤 날은 네가 늦게 왔어.
또 어떤 날은 안내문을 며칠 내지 않았지.
다른 날은 숙제를 안 하기도, 엎드려 자기도 했어.
나도 널 그대로 이해해주고도 싶단다.
늦은 이유도, 안내문을, 숙제를 못 낸 이유도 있겠지.
하지만 반복되는 문제에 나도 교사로서 가만있을 순 없었단다.
그래.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
네가 잠을 자던 친구들은 상관 안 해.
나만 너의 문제에 개입하는 '선생'이란 인간이니까.
내가 널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면 이렇게 싸울 필요도 없었는데.
하지만 내가 널 가르치지 않았다면 만남의 이유도 없었던 것을.
내가 너와 다른 상황에,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었다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는, 그런 마음이 있어.
인연
언젠가 멀리 현장체험을 간 날이었지.
난 조금 멀리서 너를 지켜볼 수 있었어.
넌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었지.
그곳에서 넌 아주 밝게 빛나 보였어.
교실을 벗어나서, 내 수업을 벗어나서, 나를 벗어나서.
살아있는 네가 그리 이뻐 보일 수가 없었지.
그래.
이번 생엔 그저 너를 보내줘야 하는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하필 이 시기에, 너의 담임선생님으로 만나서.
서로 더 상처만 남길 바에야.
너를 가르치겠다는 욕심은 버릴게.
그저 무사히 너의 1년이, 우리의 1년이 지나가길.
너의 삶에 또 다른 좋은 인연들이 많이 나타날 거야.
그리고 나중엔, 먼 미래엔, 다음 생에는 나도 웃으며 함께하길.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