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아- 25) 욕구 지연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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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09:23
열었다 잠갔다 할 수 있는 수도꼭지를 달아주는 게 내 목표다.
아낌없이 주고 싶은 게 부모 아닌가.
그런데 가끔은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땐 말이다.
욕구
첫째가 엄마에게 사탕을 달라고 졸랐다.
"엄마가 사탕 하루에 하나만이랬지!"
하지만 둘 다 목소리만 점점 커져갔다.
난 첫째를 살짝 불렀다.
"사탕 정말 먹고 싶어?" "응!"
그럼 5분 뒤에도 먹고 싶으면 그때 줄게.
어느새 잊고 동생이랑 놀고 있다.
난 진짜로 5분 뒤에 말하면 주려고 했다.
물론 아이에게 5분은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우리 애는 이미 교육이 되어 있는 상태다.
"5분 뒤에 줄게~" 했는데 "지금 줘!!" 이런 집이라면.
마트에서 뒤집어지고 떼쓰는 아이라면 초기 교육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교육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 어리다.
눈에 보이면 계속 먹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목적
내가 5분을 말하는 건 멈추기 위해서다.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선 욕구가 증폭된다.
자기 욕구에 빠져버린 상태에선 다른 게 보이지 않는다.
사탕에 목매면 약속도 엄마도 상관없다.
그 상황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
멈춰야 보이는 것엔 아이도 해당된다.
마시멜로 실험을 아는가.
지금 먹으면 1개, 기다리면 2개이다.
기다렸던 아이들이 나중에 성공했단다.
성공을 위해 가르치란 말은 아니다.
그러나 왜 가르쳐야 하는가는 분명히 해야 한다.
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하도록 가르치고 싶다.
교육관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은 통제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평등한 관계와 함부로 하는 관계는 구분할 것이다.
통제 불능의 상태에선 어떤 말도 먹히지 않는다.
애가 먹고 싶다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기다림의 스트레스보다 당장의 달콤함을 주겠다.
통제 없음, 제한을 풀어버린 상태에선 한계를 모른다.
사실 어려운 문제다.
얼마의 통제가 옳은지 정해진 것도 없다.
나도 아이도 감정의 동물이라 항상 이성적으로 판단되진 않는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아이가 밑 빠진 독이 되면 아무리 부어도 의미 없다.
열었다 잠갔다 할 수 있는 수도꼭지를 달아주는 게 내 목표다.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