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교실 바라보기] 9. 넌 60점이야
평가는 말 그대로 대상의 능력, 성취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결된 다른 요인들로 인해 평가의 본질 자체가 변질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아직도 많다.
학생의 점수가 교사의 점수다.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인식,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학생을 정말 잘 가르쳐서 성취가 올라간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성취 결과에만 집중하면 평가는 왜곡된다.
1. 문제 알려주는 시험
여기서 시험 나오니까 밑줄, 몇 페이지 중요하니까 표시해놔라. 또는 40문제를 알려주고 그중에 20문제가 나온단다.
중고교 시절.. 시험기간만 되면 수업시간은 족집게 수업이 된다. 특히 예체능 과목은 더더욱..
학생은 공부에 부담이 줄고, 교사는 가르칠 부담이 줄고, 양쪽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고..
2. 너그러운 시험
2008년 기간제지만 처음으로 교단에 섰다. 중간고사를 보고 반별 성적표를 제출했으나 교감선생님이 우리 반은 왜 이렇게 점수가 떨어지냔다.. 다시 보던가 어떻게 하랜다..
애들을 탓하고 싶지도 않았고 어떻게 더 가르친다고 점수가 올라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요령껏.. 문제에 답을 안 쓴 아이는 다시 찍을 기회를 주고 객관식에 부분점수도 부여하고 내 맘대로 점수를 올렸다.
뭔가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학교는 점수를 요구하였다.
3. 죽도록 집어넣는 시험
2010년 정식 신규발령을 받았다. 일제 고사가 다시 부활하여 초등학생도 자율학습을 시킨단다. (실제 일제고사 부활은 2008년부터다.)
방학중에도 6학년은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란다..
(그래도 예전처럼 마대걸레로 일명 '빠따'를 맞아가며 점수를 올리진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려나...)
반발이 심했지만 특히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아이 한 명을 특수아동으로 하여 평균에 뺄 것인가 넣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심각했다. 그 아이에 대한 교육이 바뀌거나 그 아이의 평가가 바뀌는 건 전혀 없다. 단지 학교 전체의 평가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학교끼리 점수를 서열화하여 지역 교장들을 불러 등수를 공개하고 대책 등을 마련하라고 했단다.. 결국 개망신이란다.)
넌 60점이다. 이게 니 점수다.
왜 말을 못해!
어떻게 말해요! 그럼 난 비참해지잖아요.
말을 못 하는 건 학생이 아니다. 비참해지는 것도 학생이 아니다. 학생은 잘하고 못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부모나 선생님이 받아들여 주지 않기에 못하는 것을 끝끝내 짊어지고 갈 뿐이다.
교사는 이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겨우 말하는 순간 비참해진다. 내가 60점짜리 교사가 되기 때문에..
(물론 학력을 중시하여 학생의 점수를 교사에게 책임 지우던 과거에 비해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평가의 본질에 대해 교사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정책의 변화, 주변 인식에 휘둘릴지 모른다)
평가는 평가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평가를 하는 주체가 다시 평가 대상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묻는다면.. 평가는 본질을 잃고 왜곡된다.
(감사원이 감독을 했더니 비리가 나왔다. 감사원에게 다시 묻는다 관리 감독을 어떻게 했길래 비리가 나오게 방치했냐고.. 말 같이 들리는가? 그럼 다음번에는 감사원이 자기 본연의 역할을 잃고 어떤 곳에도, 누구에게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럴지도..)
너의 것을 너에게로
교사마다의 전문분야도 다르고 역량도 다를 것이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최대한의 배움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자신의 방법이나 다른 모든 것들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것도 없어선 안될 것이다. 하지만.. 학생의 것은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
내가 본 너의 강점과 약점, 특별한 재능 등등.. 내가 봐온 학생의 모든 것을 학생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교과와 관련한 모든 공부가 부족하다고 해도 온전히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학생은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