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를 위한 개념과 멘트- 9) 원칙과 융통 사이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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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14:22
[열심히 '하지 않을' 권리]에서 가능한 학생이 하도록 주라고 했다.
[말로만 하는 교육]에서는 그것이 되도록 지켜보라 했다.
이젠 무엇을 지키라 할지에 대해 고민할 차례이다.
원칙을 깨는 융통
교사마다 지켜야 할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이 있다.
도덕, 철학적인 부분부터 아주 작은 행동, 규칙까지.
문제는 그런 원칙들이 깨지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들이 있다.
'애들이 얼마나 뛰고 싶으면 그럴까.'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면 숙제하기 싫은 마음은.
공부보단 노는 게 좋고, 자유롭고 싶다면.
뛰고 싶은 마음으로 뛰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가능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진정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면 필사적이 될 테니.
하지 않으려는 마음까지 이해되는 건 당신의 원칙이 아니다.
원칙을 위한 융통
학생들과 '복도에서 뛰어도 되는가'에 대해 얘기 나눈 적이 있다.
대부분 안 된다고 했지만 예외상황은 있다고 했다.
싸움이 났거나, 누가 다쳤거나 하는 다급한 일.
예외란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놀이터가 된 복도엔 융통성을 발휘할 기본이 없다.
모두가 신호를 지키고 있을 때, 응급차를 위한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화장실을 간 친구가 예외일 수 있는 건 모두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일기를 못쓰는 예외가 있는 건 그 날을 제외하고 '쓰기 위함'이다.
융통성은 원칙 위에 가능하고, 원칙을 위해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원칙이 '일기 쓰기'같은 사소한 행동 하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부디 자신이 만든 작은 원칙 안에 갇히는 일은 없길 바란다.
어떠한 진리도 맥락을 잃으면 그르다.
융통을 위한 원칙
무엇이 원칙이 되는 건 그 구성원의 동의가 있을 때다.
일기를 억지로 쓰고 있다면 내 원칙일 뿐 우리의 원칙은 아니다.
'싫은데 하고 있는 것'과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은 강제와 능동에서 다르다.
고학년이 되면 보상이나 관계만으로 움직이긴 어렵다.
왜 이것이 옳은가, 필요한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은 당신의 원칙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거 하나는 꼭 지키자'하는 원칙이 있는가.
그 원칙에 예외를 포용하여 함께 갈 여유가 있는가.
원칙보다 더 큰 철학이 있어, 깨고 넘어설 용기가 있는가.
다리를 다친 학생을 모르고 '모두 뛰어야 한다'는 원칙은 잔인하다.
'다친 사람은 쉬어라' 같은 예외도 만족스럽지 않다.
다친 사람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말이다.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