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학교 바라보기] 15. 내 삶과 교직 - 4) 순수함, 그리고 교직사회
낭상
2
2002
0
2017.09.18 09:38
기억도 흐릿한 꼬꼬마 시절, 놀다 보면 목이 말랐다.
내 집은 5층이었고,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난 1층 문을 발로 차며 물을 달라했다.
엄마의 말론 그렇게 물을 먹고 또 놀고 그랬단다.
누구나 그랬듯, 순수했던 것 같다.
그냥 목이 말랐고, 물을 주셨고, 그래서 찾았다.
그리고 난 아직도 그때의 순수함이 남아있나 보다.
순수한 마음
난 순수하게 살고 싶다.
좋은 것을 좋다고 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하겠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겠다.
하지만 순수함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순수함, 그 어려움 글]에서 했던 말이다.
https://brunch.co.kr/@darkarkorn8cnl/290
그래서 날 좋아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 잔 기울이련다.
억지로 먹이려는 그런 자리는 거부한다.
주말에 술을 한잔 했다.
교장선생님, 교무부장님 셋이 남았다.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난 좋았다.
내가 그냥 사람으로서 그들을 좋아했듯, 그들도 나를 사람으로 좋아해 줬다.
어리다고 함부로 하지 않았고, 경청이 아닌 대화가 되는 시간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먼저 들어갔고, 교무부장님은 집으로 가자했다.
난 더 먹고 싶었고, 불러 주셨고, 그래서 갔다.
어린날의 그 발길질처럼.
교직사회
어떻게 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내 순수함을 지키고 살 수 있는 요건이 무엇일까.
나에겐 세 가지가 크게 느껴진다.
1. 모든 평교사는 같은 직급이다.
교감, 교장을 제외하면 나이, 경력은 있어도 다 똑같은 교사다.
물론 학년부장, 업무부장도 나뉘어 있지만 기본은 담임이다.
각자 한 교실을 맡는 교사로서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권위적인 사람도 있지만 인턴, 사원, 대리로 올라가는 일반 직장에 비할 것인가.
2. 거의 대부분이 같은 동문이라는 것.
일반 회사에서 정말 친해지지 않는 한 형이 될까.
하지만 교직은 같은 교대, 평생 가는 식구라는 개념이 있다.
대학교 때는 1학번도 '하늘 같은 선배'였지만, 현장은 다르다.
내 경험으로 대충 10살까지는 사석에선 다 형이다.
물론 우물에 고여버리면 썩어버리겠지만.
자정능력만 충분하다면 우물은 참 고마운 것이다.
또 위의 평생 가는 식구, 정년의 보장은 참 큰 역할을 한다.
3. 교장이 날 자를 수 없다.
흔히 이런 말이 있다.
'승진만 포기하면 교직이 편해진다.'
내가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뭘 할 생각만 없으면 당당해진다.
그리고 교사는 다행히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적어도 비굴하게 빌붙을 필요까진 없단 말이다.
그래서 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대부분 존중받고, 대부분 형 동생을 맺으며, 당당하게 살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교사가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인간적 사회
교사가 교직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폐쇄적인 관료 집단의 문제 같은 것들.
또는 다른 모든 것들.
나도 물론 싫은 것이 있어, [승진안행] 책도 공동으로 낸 바 있다.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회에도 나쁜 사람은 있다.
교회에도 나쁜 사람이 있고, 천국에도 악마가 있다.
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부장, 교장에게 편하게 대하는 나를 건방지다 했다.
윗사람에게 할 말 하는 나를 줄이라고 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말에 주눅 들었다면 지금 내 곁의 부장과 교장은 없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가치, 그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당신의 삶에 천사 하나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옥 같은 세상이라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위계로 가득한 직장이라도 사람으로 보이는 한 명은 있을 것이다.
날 사람으로 대해주는 한 사람만 곁에 있다면, 그래도 당신의 삶은 살만하지 않겠는가.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